오피니언 시론

교장공모제 제대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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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올 9월 전국 63개 초.중.고에서 교장 공모제를 시범 실시키로 했다. 경력 15년 이상 교원이 일반학교 교장으로 지원 가능한 '내부형', 교원 자격증이 없더라도 3년 이상 경력자가 특성화고.예체능고 등의 교장이 될 수 있는 '개방형', 농어촌 고교 중심으로 교장 자격자를 모셔 가는 '초빙형' 등 세 가지 방식이다. 경력 28년 이상은 돼야 교장이 될 수 있는 연공서열식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젊고 유능한 교원이나 민간 전문가에게 학교 경영을 맡겨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교육부는 내년 3월 53개 학교로 확대 실시하고, 평가 결과가 좋으면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은 "학교가 정치장으로 변질돼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이 심화되고, 교직의 전문성이 약화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반면 전교조는 "공모제 대상을 전체 학교로 확대하라"며 대찬성이다.

교총 주장에도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지만 교장 공모제가 학교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도 많다. 일본도 이런 취지에서 2000년 교원 자격이 없는 민간인이 교장이 될 수 있는 공모제를 실시했다. 47개 광역자치단체 교육위원회가 자율적으로 실시하게 한 결과 대부분 지역에서 도입해 100여 학교에 민간인 교장들이 있다. 정보기술(IT).금융.전력 등 전문 분야 출신이 많다. 2005년에는 IT 기업 부사장 출신의 30대 초반 남성이 요코하마(橫濱)시의 신설 공립 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는 등 특성화 학교에서 일반학교로 확산되는 추세다. 교원들의 반대가 많지만 학부모들의 찬성 여론이 높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교감 공모제도 실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치밀한 준비 없이 지나치게 성과 위주로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구체적인 선발기준도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16개 시.도 교육청이 현재 시행 중인 초빙교장제를 토대로 선발기준을 만들어 8월까지 뽑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초빙교장제와 교장 공모제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개방형 교장의 경우 일반인의 교육관이나 학교 운영 능력 등 꼼꼼히 점검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모제 교장은 교육감이 직접 뽑거나(소인수 학교), 학교운영위원회가 선정한 후보 3명 가운데 한 명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공정하고 세부적인 선발기준이 없다면 잡음이 날 것은 뻔하다. 벌써 교육청이나 학교운영위원회 인사들을 상대로 불법.편법 인사 운동이 판을 치고, 정실인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존의 교원인사 자료에 의존해 결국에는 교장 자격 취득자들이 상당수 임용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일본에선 민간인 교장을 4개월 정도 연수시켜 교장에 취임시킨다. 교육에 대해 가르쳐 시행착오나 교원들과의 마찰을 줄이려는 취지다. 일본에서도 2003년 민간인 교장이 교원들과 갈등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적이 있다. 우리 교단도 연공서열 문화가 강하고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다. 한참 후배인 교원이나 전혀 모르는 민간인이 교장으로 왔다면 교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냉소적이거나 비협조적일 수도 있다. 게다가 젊은 교장이 실수 연발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8월까지 선발해 곧바로 9월에 발령 낸다고 한다. 그러곤 문제가 있으면 고치겠다는 태도다.

그 밖에 임용 기회가 줄어든 교장 자격증 소지자들의 사기는 어떻게 진작시킬 것인지 등등 문제는 간단치 않다. 교장 공모제는 교원평가와도 연결돼 있다. 우수한 젊은 교원을 선별하기 위해선 탄탄한 평가제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교장 공모제 도입 이후 교원평가를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교장 공모제는 우리 교단의 구조개혁이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철저한 준비 없이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폐해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대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