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언론 스스로를 감시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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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뉴욕 타임스의 '공익 편집인'(Public Editor)에 임명된 대니얼 옥렌트가 지난 7일 자신을 소개하는 첫 칼럼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타임스 독자의 옹호자가 자신을 소개하다"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그는 자신의 유일한 동료는 독자들이라며 독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평가하고 독자들의 불만을 대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의 '공익 편집인'은 흔히 말하는 옴부즈맨을 지칭하는 직함인데, 미국 신문에서 옴부즈맨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현재 LA 타임스.시카고 트리뷴 등 40여개 신문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특히 워싱턴 포스트의 사례가 유명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80년에 발생한 '지미의 세계'라는 날조기사 때문에 명성이 크게 손상됐다. 재닛 쿠크라는 여기자가 헤로인을 복용하는 여덟살 난 소년 '지미'에 관한 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나중에 이 기사가 완전 허위로 밝혀졌던 것이다.

쿠크 사건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 강력한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데 비해, 뉴욕 타임스는 그동안 이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었다. 자사의 뉴스 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러던 뉴욕 타임스가 창간 이후 1백52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했다. 그 배경은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봄에 발생한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기사 표절 및 날조 사건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에서 실종된 병사의 가족에 대해 쓴 블레어의 기사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조사가 이뤄졌는데, 조사 결과 그가 지난해 10월부터 썼던 70여개의 기사 가운데 절반 정도가 표절 및 날조의 의혹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 최고의 신문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명성에는 커다란 흠집이 생겼으며, 결국 편집인 하웰 레인스와 편집국장 제럴드 보이드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공익 편집인' 제도는 이처럼 블레어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앞으로 1년6개월의 임기 동안 옥렌트는 독자의 입장에서 뉴욕 타임스 기사를 분석.비판하고 독자의 불만을 대변하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게 된다. 옥렌트는 독자의 신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연임을 추구하지 않고 임기가 끝나는 2005년 5월 29일까지만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뉴욕 타임스마저 오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언론의 생리상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마감시간의 압박, 특종 경쟁과 낙종의 두려움 등 저널리즘 세계를 지배하는 관행과 구조는 기자들에게 항상 오보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옥렌트의 말처럼 그러한 작업환경이 실수의 원인으로 설명될 수는 있지만 실수 자체가 용납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지는 잘못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는 결국 생명이나 다름없는 신뢰도를 훼손해 언론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우려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언론재단 등에서 실시한 조사 자료를 보면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언론 신뢰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말부터 제자리걸음 아니면 감소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언론의 신뢰도 위기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각 언론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이념과 상반되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이해집단 간의 이념적 대립이 심한 상황에서는 언론이 특정 관점에서 사건을 보도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언론 신뢰도는 떨어지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언론의 신중하고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옴부즈맨과 같은 독립적 평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 언론도 상당수가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역할과 권한이 극히 제한적이다. 뉴욕 타임스의 '공익 편집인'과 같은 제도를 적극 도입할 것을 권한다.

양승목 서울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