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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기원 담아 김치 만들었죠"|북 대표단에 평안도 김치 제공 호텔신라 이연경 총주방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7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대표단의 음식준비를 총괄 지휘하고있는 서울 호텔신라 총 주방장 이연경씨(54)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평안도식 김치를 특식으로 대접해 눈길을 끌고있다.
평안도식 김치는 무채와 같은 김치 속없이 통배추만 한달 동안 절인 뒤 양지머리를 푹 고아 나온 국물을 젓갈과 함께 넣어 만든 것으로 약간 싱거운 것이 특징.
이 김치는 남쪽에서 통상적으로 먹는 배추김치와 물김치의 중간형태로 그 국물 맛이 상큼하여 한번 맛본 사람 사람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이 김치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91년 12월 이 호텔에서 열렸던 남북 총리회담 때.
『시험삼아 집에서 먹던 식대로 김치를 약간 준비해 내놓았는데 북한기자 한 사람 사람이 갑자기 김치 한포기를 그릇에 담아오라는 것이었어요.』
혹시 음식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순간 긴장한 좌중은 그 북한기자가『이런 김치는 원래 이렇게 먹는 법』이라며 가져온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밥에 얹어 맛있게 먹자 폭소 속에 긴장대신 훈훈한 정감 넘치는 식사자리로 바뀌어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이번에는 개성 보쌈김치와 함께 정규식단의 하나로 배추 1백 포기 분량을 준비, 정성스레 고향의 맛을 재현해낸 이 김치는 5일 점심식사 때도 북측 대표단으로부터『북에서 먹던 맛 그대로』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있다.
김치를 통해 북측 대표단과 친숙해진 이씨지만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바라보는 감회는 사뭇 남다르다.
이씨 자신이 45년 전인 국민학교 4학년 때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긴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평북 선천 출신의 실향민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내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전수시켜주며 떠나온 고향을 잊지 말라고 말하곤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산가족의 비애를 몸으로 느껴온 이씨는 이번 회담에서 뭔가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스테이크 요리가 전문이어서 부시 미 대통령은 물론 고르바초프의 방한 때도 특별 초청될 만큼 양식요리에 명성이 나있는 이씨지만 지난 3차 회담 때 이 호텔에 투숙한 북한 대표단을 위해 뒤늦게 한식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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