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용서하세요"|유옥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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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그리운 어머니, 오는 8일은 어버이의 날입니다. 어쩔 수 없이 평생 어머님의 애물단지인 이 딸의 신세를 되돌아보게 되는군요.
벌써 제 나이 50중반, 어머님의 따뜻한 슬하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루고 6남매를 낳아 키우며 살아온지 32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변변치 못한 주변머리로 어머님 속을 썩여드리는 딸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70세가 넘으신 어머님께 아직 맛있는 음식 한그릇, 번듯한 외출복 한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6남매 데리고 각박한 세상 쪼들리며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변명이겠지요.
지난해 가을,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부쩍 더 늙고 수척하신 데다 밤이면 신경통으로 괴로워하시는 것을 보고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선뜻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드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골백번도 더 생각했지만 제 능력 밖이었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돌아오는 제게 속바지 주머니 안에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파란 지폐 두장을 누가 볼세라 제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셨습니다.
17세에 시집와 매운 시집살이 10년이 끝나니 아버지는 첩을 세명이나 갈아치우고 끝내 어머니 곁을 떠나셨지요.
어머니께서는 삯바느질·두부장사·콩나물장사로 돈을 벌어 우리 남매를 키우셨지요. 그런데도 철없던 나는 두부장수 딸인 것이 부끄러워 엄마한테 떼쓰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시집가서도 10여년 넘게 집 한칸 마련 못하고 애쓰는 딸을 위해 어머니는 집 앞 텃밭에 깨며 콩을 심어 가을이면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식아, 남의 집 딸은 시집 잘가 친정 에미 제주도 구경도 시켜준다더라』던 푸념의 참뜻을 이제 압니다. 어머니, 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들고 곰국감 사들고 찾아가 큰절 올리며 용서를 빌겠습니다.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 539의10 5통5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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