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동차 판금 차재호씨|"보다 멋있게" 차 옷입히기 3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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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판금의 명인 차재호씨(54·경남 울산시 신정2동 1637의26)는「현대인의 발」 자동차에 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히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현대자동차 승용 시작부 3백여명의 기능인과 더불어 새로 개발되는 자동차의 매력적인 「외모」를 형성하는데 기여, 소비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는 자동차의 멋을 창조하는데 32년간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인물이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에 다양하고 산뜻한 옷을 입히는 일이 즐거워 직책을 사양한 채 평생을 평사원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는『자동차만 잘 나오면 되지 뭐 그리 직책에 신경을 쓰겠냐』며 산업 일선의 역군임을 긍지로 삼고 있다.
그는 만년 평사원이지만 자동차 판금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지난해 정부가 산업 명장으로 포상할 정도의 최고 기능인.
그가 하는 일은 디자인실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설계 도면을 보고 차체의 외관을 만들어 내는 시작차 제작.
그가 철판을 두드려만든 외관이 사내에서 인정받으면 이는 곧 금형을 이용해 대량 양산하는 생산라인으로 옮겨진다.
그는 자신이 만든 차체의 지붕·도어 등이 만들어지면 쉽게 이를 짜맞춰 자동차 외형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스킨지그」를 85년 개발, 균일한 제품 생산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시킨 사람이다.
또 자동차 차창 틀인 「찬넬」 부품 제작시 균열이 없고 모양이 고르게 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과 판금용 가위로는 어림없는 두꺼운 철판의 절단 작업을 해결해주는 기계식 「판넬」 절단기의 사용 방법도 도입해 품질 향상은 물론 생산성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그는 19세인 57년부터 부산 통일 자동차 공업사에서 자동차 만들기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돈 많은 사람이나 관공서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면 그에 응하는 주문 생산을 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엔진을 만들고 외관은 드럼통을 망치로 두드려 덮어씌워 시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다 떨어진 텐트 속에서 추위에 손발이 터지고 부르터도 기진맥진할 때까지 철판을 두드렸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세끼 끼니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쓸모 없이 나뒹구는 드럼통이 자신의 손을 거쳐 「살아 움직이는」 자동차로 변신해 장안의 내로라 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데 매력을 느껴 이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현대자동차에서 신 모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실력을 큰 곳에서 발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일터를 현대자동차로 옮긴 것은 지난 75년. 그가 그곳에 들어가 처음 한 일은 「포니 1」의 시작차 제작.
그는 「포니 1」에서 최근의 「엘란트라」에 이르는 한국 자동차의 모습 변천을 이루어내며 제일 선두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판금은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한 분야로 세월이 흘러야 정교한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자동차 외형만은 한국 자동차가 제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후배들과 지혜를 모으고 싶다』고 했다. 【울산=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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