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들 이중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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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들이 고전 중이다. 증권사와의 경쟁으로 은행의 자금원이었던 요구불 예금이 줄고 있는 데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그간 짭짤하게 굴려왔던 주택담보대출도 급감하고 있다. 싸게 조달했던 자금줄은 막히고, 비교적 쉽게 굴려왔던 투자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중고를 맞은 은행들은 새 수익원 찾기에 비상이 걸렸다.

◆요구불 예금 일제히 감소=요구불 예금은 은행이 사실상 조달비용을 들이지 않고 장만해 왔던 '핵심예금'이다. 만기가 없는 보통예금 및 저축예금.기업자유예금 등 연 0.1% 안팎의 사실상 '제로금리'를 지급한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굴려 은행은 이익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자금줄이 요즘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23일 각 은행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평균잔액 기준)은 2월 현재 78조6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1조1000억원(-1.4%) 줄었다. 2월 들어서는 국민(-1.6%)과 우리(-1.2%).신한(-1.01%).하나(-1.86%) 등 모든 은행이 일제히 감소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의 등장에 따라 요구불 예금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은행의 이익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CMA는 단 하루만 맡겨도 금액에 관계없이 연 4%대 이자를 지급한다는 장점을 내세워 빠르게 인기를 끌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넉 달째 감소세=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월 19일 현재 152조6980억원으로 지난달 말에 비해 1320억원 감소했다. 올 들어서는 넉 달째 줄고 있다. 이달 감소폭은 이미 지난달과 2월 한 달간 감소폭인 785억원과 823억원을 웃돌고 있다.

얼어붙은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좀체 풀릴 기미가 없다. 은행이 돈을 굴려 수익을 내 왔던 주요 투자처가 사라진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공시가격 6억원으로 강화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을 앞두고 대출상환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주택대출 시장의 냉각기가 상반기 내내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은행들의 '돈장사'가 어려워진 셈이다.

◆중소기업대출.신용대출로 몰려=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지자 시중은행이 중소기업대출과 신용대출에 '올인(다 걸기)'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9203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달에는 6조7562억원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은행들은 신용도가 좋은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금리를 우대해 주거나 대출한도를 높인 새로운 신용대출 상품들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재직기간이나 재직업체에 관계없이 신한은행에 3개월 이상 급여이체를 한 고객에게 금리를 우대해 주는 '신한 샐러리 론'을 내놓았다. 우리은행은 이달부터 연소득의 100%뿐 아니라 최대 1억원을 추가 대출하는 '우리 로열클럽(Royal Club) 대출'을 판매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우량 고객에게 앞다퉈 낮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면서 "신용대출 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지만 달리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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