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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의 말하기 칼럼] 부자 친구 만날 때 주의할 것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요즘 부자(얼마나 구태스러운 말인가)들은 존경받지 못한다, 라기보다는 최소한 멸시받진 않는다. 그들은 추앙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평가받는 존재이긴 하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부정적이건 아니건 매력적이다. 그들은 보통 부자들에 대한 통념과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관계가 확장되고, 사회적 키재기에 휩쓸리다 보면, 결국 나를 부자 친구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없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들을 만나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동경하게 되고, 기운 센 카드회사 여직원들의 독촉전화에 시달리는 처지 따윈 싹 잊고 만다. 늘 받을 줄만 아는 얌체가 되기 싫어 ‘그들 수준에 맞는’ 경제적 호기 한 번 부렸다가 신용불량자 되는 건 시간문제다.

돈에 대해 부자들이 갖는 추상적 무심함을 볼 때마다 거기엔 결코 타넘을 수 없는 국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버스비 아끼려고 다섯 정거장 걷는 데 쟤는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외제 차 타네, 우리 아버지 1년 버는 돈을 초등학교 1학년 애가 다 쓰네, 약 올라봤자 공허할 뿐이다. 게다가 내가 아는 부자들은 자신의 경제력에 대해 그다지 자의식이 없다. 죄책감 따윈 더더구나 없다.

돈이 많으면 근심도 많으리라는 건 우리의 착각이다. 그들은 태연하게 말한다. 날고 싶다면 떠 있어라. 날개가 없다면 비행기를 빌려라. 간단하다. 그들은 까맣거나 하얗다. 중간은 없다.

나는 시계 수집벽 때문에 집안 서까래가 다 휘청하지만, 부자들과 비교하면 그래 봤자 터무니없이 싸게 먹힐 뿐이다. 나도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동경할 수 있고, 집을 판다면 소유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건 나에게 주어질 게 아닌 셈이다. 우리는 결국 소유한 것들의 지배를 받게 되니까.

열등감을 느낄 수조차 없을 만큼 돈 많은 친구들을 만날 땐 세심해야 한다. 함께 식사를 할 때 음식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비싸긴 뭐가 비싸? 너 정도가?”라거나, “넌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겠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건 나의 자존심이다. 동시에 내가, 그의 바지가 멋지다고 칭찬했더니 “으응, 이거 발렌시아가거든” 하고 대꾸하는 부자 친구와는 다신 만나고 싶지 않다(그땐, 고맙다는 말 말고 뭐가 더 필요한가).

내가, 휴가 잘 다녀왔느냐고 물을 때, 오랜만에 서울을 떠나니 참 좋더라,라고 말하면 족할 것을, 굳이 런던 가서 해러즈 백화점을 아예 싹 훑었잖아,라고 말하면 그는 더 이상 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 순간 그는 나에게 돈 자랑할 기회만 노리는 속물이 되어버리니까. 그건 괜한 자의식이고 우스운 방어심리이지만, 죽을 때까지 그걸 가볍고 우아하게 넘기는 법은 못 배울 것 같다.

부자들을 만날 때 나는 그들의 경제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든든한’ 친구로 충분하다. 하지만 가끔 그들에게 충고한다. 세상에는 레스토랑이나 쇼핑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는 소비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따지고 보면 사랑과 우정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추어가는 데서 시작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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