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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난 힐스테이트에 가보니…현대건설 '랜드마크' 구상 삐걱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최근 KT와 현대건설이 추진한 ‘서울숲 힐스테이트’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힐스테이트가 어떤 곳이기에 많은 말이 나오는 것일까? 힐스테이트는 현대건설이 ‘건설 왕가 부활’을 목표로 런칭한 브랜드다.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런칭 브랜드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아파트가 성공해야 현대건설이 건설 명가로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부터 현대건설의 목표가 삐걱거리고 있다. 특혜 의혹에다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숲 힐스테이트 45평을 분양받은 정희범(가명)씨는 고민이 점점 깊어져만 간다. 막상 분양받기는 했지만 서울숲 힐스테이트로의 이사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숲 힐스테이트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이사를 반대하기 시작했다.시공 초기부터 말이 많으면 나중에 제값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또 분양 접수 때 현대건설이 홍보한 ‘아파트 입지가 좋은 곳’이라는 말에도 신뢰가 안 간다. 성수동 서쪽에는 서울의 심장을 표방하는 서울숲이 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보여 ‘최고의 조망권’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서울숲 힐스테이트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정씨는 “지난해 11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분양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하늘을 날듯한 기분이었다”며 “입주가 아직 2년이나 남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많은 의혹을 안고 있음에도 무사히 착공에 들어갔던 서울숲 힐스테이트가 왜 이제 와서 입주자들의 원망을 받아야만 할까? 한마디로 주거 환경이 안 좋아 투자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성수동은 2호선 성수역이 바로 앞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고 시내 한복판에 이마트가 있어 사는데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또 주변에는 서울숲과 한강이 있어 최고의 주거환경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막상 서울숲 힐스테이트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그렇지도 않다.

서울숲 힐스테이트와 맞닿은 북쪽에는 정밀사, 자동차 공업사 등 중소 제조업체 2900여 개가 위치하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공장 자체는 중요한 곳이지만 주거환경에는 썩 좋지 않다. 파이프 때리는 소리, 금속 깎는 소리 등의 소음과 공장들 사이로 나있는 좁은 골목길이 그 이유다.

밤이 되면 이 거리는 어둡고 조용하다. 길가에는 몇 개의 가로등이 설치돼 있지만 이것들로 사고를 막아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6년을 살았다는 한 주부는 “밤에 학원을 다녀오는 딸이 걱정돼 매일 밤마다 성수역으로 데리러 나간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 제조 중소업체는 이전 계획이 없다.

또 서울숲 힐스테이트와 이마트 사이에는 경찰기마대가 있다. 경찰기마대는 일종의 ‘혐오시설’이다. 정밀사를 운영하는 임모(62)씨는 “여름만 되면 경찰기마대의 말 때문에 파리 등 각종 벌레가 많아진다. 또 악취도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숲 힐스테이트가 완공되면 경찰기마대 시설을 지붕으로 덮겠다는 소문은 돌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경찰기마대 측은 “부지 몇 평은 팔 수 있지만 시설을 전부 이전하는 것은 힘들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장 밀집 지대 옆엔 경찰기마대

이런 문제들은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완공 후 입주 시기에 최고의 조경이 보장된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서울숲 힐스테이트와 맞닿은 남쪽에는 이마트가 있다. 지난해 10월 이마트는 “본사를 은평점에서 성수점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이마트 성수점 바로 옆에는 본사 신사옥 공사가 한창이다. 신사옥 규모는 지상 20층에 연면적 6430평에 달한다. 완공은 2009년 1월이다. 서울숲 힐스테이트 완공보다 4개월 빠르다.

거주지 바로 앞에 20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면 과연 최고의 조경 조건으로 꼽히는 한강이 보일지 의문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주거 건물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처음부터 입주 전 세대에 한강이 보일 것이라는 홍보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서울숲 힐스테이트 남쪽 지역은 현재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발표가 보류됐지만 4차 뉴타운 지역도 포함돼 있다. 이들 지역이 재개발되고 만약 뉴타운이 들어선다면 서울숲 힐스테이트만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은평 뉴타운도 아파트 층고 제한이 ‘평균 15층 이하(최고 20층 이하)’로 돼 있다. 성수 재개발지역도 은평 뉴타운 규모와 비슷하다고 할 때 20층 이상만 한강을 겨우 볼 수 있다. 5개 동으로 완료되는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24·28·20·21·21층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또 향후 10년 내 서울숲 주변에 각종 아파트 건립이 예정돼 있다. 만약 이들 아파트가 완공된다면 서울숲 힐스테이트가 최고의 조경으로 주장하는 한강과 서울숲은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투자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이번 분양가도 주변 지역 아파트보다 낮다. 총 445가구 중 35평과 45평에 배정된 가구수는 264가구. 이들 분양가는 7억원과 9억6000만원 안팎이다. 서울숲 옆에 있는 동아·장미·대림아파트와 한강에 바로 인접해 있는 강변현대·한신한강·청구아파트는 32평을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 8억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대부분 지은 지 10년 정도 됐다.

서울숲 힐스테이트의 펜트하우스인 85평형(3가구)과 92평형(2가구)은 27억4000만원과 29억9000만원에 분양돼 역대 평당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85평형 펜트하우스는 101동에서 1가구, 103동 2가구가 들어간다.

또 92평형 펜트하우스는 102동에서 2가구가 들어갈 예정이다. 인근 지역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유명인이 분양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펜트하우스인 만큼 좋은 조건에서 안락하게 살고 싶은 돈 많은 사람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현대건설이 ‘힐스테이트(Hillstate)’라는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처음 짓는 아파트다. 힐스테이트는 언덕 및 고급 주거단지를 뜻하는 힐(Hill)과 높은 지위·품격을 의미하는 스테이트(State)의 합성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미국 베벌리힐스가 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표방해 ‘힐’을 넣어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아파트보다 분양가 낮아

베벌리힐스는 미국에서도 부자 동네로 꼽히는 곳이다. 일반 주택은 50억~100억원 정도이며 유명한 집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마이클 조던, 데미 무어 등 유명 스타의 집과 역대 대통령의 사저(私邸)가 많이 있어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말 런칭한 힐스테이트 브랜드는 아파트 하면 현대건설을 떠올리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브랜드 출시가 워크아웃 졸업 이후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현대건설의 건설 왕가 부활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현대건설의 의지가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L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입지 조건도 안 좋을 뿐 아니라 겨우 5개 동 400가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낮아 이 지역의 랜드마크는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남영 기자 hynew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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