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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금융제국 만든 과정 털어놓으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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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리얼 딜
샌디 웨일
주다 크라우샤 지음
이주형 옮김, 북@북스
628쪽, 2만4000원

자수성가형 기업인의 자서전은 대개 기승전결이 뻔하다. 젊었을 때 고생하다 노력 끝에 성공을 거둬 거부가 된다는 식이다. 게다가 본인의 구술에 의존한 자서전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인간의 기억이란 선택적이어서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오래 간직하지만, 불리하거나 흠이 될만한 것은 빨리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샌디 웨일의 자서전은 다르다. 서술 형식은 1인칭이지만 감상적인 회고나 미화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돼 있다. 그 대신 기록과 분석을 앞세운다. 집필을 도맡은 주다 크라우샤가 월스트리트의 이름 난 증권 애널리스트이기 때문인듯 하다.

샌디 웨일은 맨주먹으로 트래블러스 그룹을 키워낸 뒤 시티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거대 금융 제국을 건설한 신화적 인물이다.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는 세계적인 금융 황제다.

성장기에서 출발해 2003년 은퇴를 발표할 때까지의 기록은 웨일의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인수와 합병으로 점철된 미국의 현대 금융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엔 생존을 위해 대형화와 국제화를 추구해온 미국 금융기업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웨일의 개인적인 경험도 흥미거리다. 그는 경영진 내부의 암투, 믿었던 동료와의 불화, 충직했던 부하의 배신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술자리에서 고위 임원들 사이에 벌어진 주먹다짐,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갈등 등 알려지지 않은 일화도 소개한다.

이 책의 압권은 역시 웨일이 키운 트래블러스 그룹과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티은행의 합병 과정이다. 책 제목인 '리얼 딜'도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합병은 웨일이 시티은행 회장이던 존 리드에게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덩치 큰 금융 기업의 합병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설득과 양보, 오해와 대립이 끝없이 반복됐다. 당시 웨일과 리드는 거의 초인적인 집중력과 돌파력, 그리고 끈질긴 협상력을 보여줬다. 웨일은 그 협상의 현장을 마치 다큐멘타리 영상이라도 틀어주듯 생생하게 재현해준다.

웨일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 때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하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의 경험은 비즈니스와 관계 없는 독자들에게도 참고가 될만하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충실해 읽기가 편하다. 다만 곳곳에 나오는 금융 전문용어를 친절히 풀이해 줬더라면 일반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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