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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父子 한마음의 '문화 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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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창덕궁을 길 하나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정원에선 통일신라 시대 축조된 3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단아하고 세련된 형태가 눈을 즐겁게 한다. 고려 시대의 부도(浮屠)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선 오는 15일 개관 10주년을 맞아 조선 시대 불화·불상·공예품 50여점을 공개하는 ‘중생의 염원전’이 열린다.

문화재도 문화재지만 시선을 잡는 건 박물관 사람들이다. 관장 권대성(62)씨 3부자가 한 공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영국 런던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장남 도균(38)씨는 박물관 부속 인도티베트불전연구소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티베트 불경을 영역(英譯) 중이며, 일본 요코하마대에서 MBA 학위를 받은 차남 형돈(34)씨는 부친을 따라 박물관 업무를 익히고 있다. 아버지가 시작한 박물관을 두 아들이 이론·실무면에서 떠받치는 형세다. 살림집마저 박물관 옆에 둘 만큼 이들의 ‘공조 체제’는 굳건하다.

차남 형돈씨가 입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님이 '의식화' 교육을 했습니다. 형님은 공부하라고, 저는 사업하라고 말씀하셨죠. 그간 갈등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람이 커요. 우리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느냐는 자부심도 생겼죠. 사실 저는 막노동꾼과 다름 없어요. 유물을 나르고, 포장하고 등등, 잠자리에 들면 온몸이 쑤셔요."

장남 도균씨도 "아버님은 '스님'입니다. 술.담배.여자.도박 등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죠. 지난 30년간 여윳돈만 생기면 유물을 사들이셨어요. 지금도 시간나는 대로 인사동을 순례하시죠."

권관장은 지난 30년간 3천여점의 불교 미술품을 수집했다. 종중에서 물려받은 땅과 개인 사업을 통해 번 돈 대부분을 문화재에 투입했다. 문명대 동국대 불교미술문화재연구소장은 "권씨가 사재로 불교미술관을 세운 건 일본인에 맞서 국보급 유물을 수집해 간송미술관을 만든 고(故) 전형필씨의 쾌거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권씨가 유물을 모은 동기는 소박하다. 1970년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 전국사찰판화전에서 '금선묘아미타삼존도(金線描阿彌陀三尊圖)'에 반해 당시로는 거금인 30만원에 구입한 이후 하나 둘씩 모은 게 지금까지 커져왔다.

"처음엔 그냥 좋았습니다. 집과 사무실에 두고 뿌듯해했죠. 3백점까진 소유 개념도 강했어요. 그런데 일정 단계에 오르니 '내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70년대만 해도 문화재의 해외 밀반출이 심각했는데,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죠. 한점 한점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권씨는 93년 불교미술박물관을 건립했다. 우리 전통문화의 극치인 불교 미술품을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자는 뜻에서다. 그리고 이번에 6억원을 들여 1백20평 규모의 전시장을 새로 짓고, 재개관전을 열게 됐다. "유물 수집은 좋지 않은 취미입니다. 가족을 많이 힘들게 했어요. 돈과 감식안,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박물관은 건립보다 운영이 더 어렵거든요."

형돈씨도 동의했다. "불교의 대중화.일반화를 꿈꾸었던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박물관에도 전문 경영기법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전을 활발하게 준비하는 동시에 각종 문화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어렵게만 여겨지는 불교 문화재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물관은 내년 4월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권관장이 오래 전 구입한 서울 창신동 안양암을 살아있는 사찰 박물관으로 꾸민다. 일종의 별관 형태로, 양 박물관을 연계하는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향후 3천여평의 대형 박물관을 세운다는 원대한 구상도 있다. 권씨 부자의 '문화 보시(布施)''문화 공양(供養)'은 끝이 없는 것 같다. 02-766-6600.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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