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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문학은 男女의 싸움터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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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여자를 혐오스럽게 생각한 데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말에 당혹해 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여성을 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혐오의 주체는 당연히 남자다. 남성들은 생래적으로 여성을 두려워했다. 겉으론 문화를 일구고, 문명을 창조했으나 여성 앞에선 '기'를 펴기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리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성의 페르소나'를 쓴 미국 문화평론가 캐밀 파야의 주장이다. 그는 나아가 다음과 같은 말도 주저없이 뱉는다. "여자의 몸은 남자가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미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느끼는 공포증의 표출이다.

예컨대 문학의 주요 장르인 비극에서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드물다. 비극은 세상사의 흥망성쇠를 파악하는 남성적 패러다임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의 토대는 허약하다. 비극의 남성 주인공들은 자연의 자궁, 즉 어머니로부터 달아나려다 결국 그 안으로 되돌아간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 대표적 보기다. 남성과 여성은 언제나 매혹과 혐오의 난폭한 충격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성의 페르소나'는 도발적이다. 그런 만큼 신선한 구석도 많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나아가 문화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터일 뿐이다. 다윈식 적자생존 논리가 횡행하고, 프로이트식 욕망과 자아가 대립하는 격전지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을 유지하며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를 거쳐 셰익스피어.괴테.발자크.보들레르.호손.디킨슨 등 근.현대 작가까지 서양 문학의 큰 줄기를 훑고 있다.

일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루소는 여성을 자연과 동일시하며 숭배했던 나머지 숙녀 차림으로 카니발에 참여했다. 반대로 사디즘(가학주의)의 원조로 꼽히는 사드 후작에게 자연은 섹스와 다름이 아니었다. 사드는 자연을 '정액과 타액이 질질 흐르는 괴룡(怪龍)'으로 파악했다.

책에선 성을 둘러싼 여러 유형의 '페르소나'(가면)가 벗겨진다. 성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장치라는 페미니즘 이론이나, 신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독교 교리가 전면 부정되고, 자연 앞에 벌거벗고 선 인간 군상이 드러난다.

한편 '문학 속의 에로스'는 보다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문학과 성, 작가와 섹스라는 분석틀은 '성의 페르소나'와 유사하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성의 변천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사랑과 고통, 성의 억압과 발현이란 전통적 주제를 다루되 개별 작품에 대한 분석이 섬세하고, 문장 또한 유려해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독일 문호 괴테부터 현재 활동하는 프랑스 작가 우엘벡까지 2백20년에 이르는 서양 현대문학을 조망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하고만 관계가 가능했다는 괴테, 귀족 집안 유부녀의 도움을 받아 성공을 꿈꾸었던 발자크, 사이가 틀어진 아내를 죽을 때까지 증오했던 톨스토이 등이 소개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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