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받은 감정인의 증인신문/남정호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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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0일 오후 김기설씨 분신자살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강기훈 피고인(27)의 유서대필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 「제2라운드」가 펼쳐진 서울고법 법정 국과수 뇌물수수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김형영 실장(53)이 강피고인 1심 재판때의 증언에 이어 5개월만에 다시 증언대에 섰다.
김실장은 강피고인의 필적이 숨진 김씨가 남긴 유서의 글씨체와 같다고 감정해 강피고인이 유죄를 받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본인. 김실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터져나오며 감정의 신뢰성 여부가 또다시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변호인측은 무려 2백여개의 신문사항을 준비,국과수의 공신력에 흠집을 내기 위한 포문을 열었다.
­증인이 유서와 강피고인의 글씨체가 70%이상 같으므로 동일하다고 판단한 것은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감정한 것 아닙니까.
『전문가로서의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절대 틀리지 않은 감정입니다.』
김실장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증인은 이창열씨 사건과 관련,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유리하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6백만원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순간,검찰석에서 즉각적인 반격이 날아왔다.
『지금 김실장은 이번 사건의 증인으로 불려나온 것일뿐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증언을 강요받을 수도 없으며 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을 들춰내며 결정적 증인인 김실장 보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실장은 힘을 얻은듯 자신의 수뢰부분에 대한 30여개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변호인측이 잠시후 10년전 김실장이 허위감정 혐의에 휘말렸던 또다른 사건의 자료를 들고나와 신문을 시작하려는 순간,
『재판장님. 변호인측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된 사건에 대해 희미한 복사물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며 검찰측은 재빠른 응수로 제동을 걸었다.
『검찰관은 말조심하시오. 우리가 이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줄 아시오.』
검찰과 변호인간의 감정싸움 일보직전까지 다다른 법정공방은 무려 7시간이나 계속됐다.
결국 『돈은 받았지만 감정은 틀림없다』는 김실장의 주장과 『돈을 받아 구속된 김실장의 감정은 모두 엉터리』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중 어느쪽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합리적 생각과 동떨어진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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