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개방 일정제시 배경/미 압력보다 자의에 의한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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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개방 「외치」로 금융자율화 실험
이제는 국내금융의 자율화라는 「내치」가 금융개방이라는 「외치」에 의해 이뤄지는 본격적인 실험단계에 들어섰다.
금융자율화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외국과의 금융개방협상을 「해외로부터의 선물」로 역활용할때도 됐다는 이야기다.
재무부가 27일 발표한 금융시장의 단기 개방일정 자체는 이미 여러번 예고된 것이고,또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라기 보다 어차피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라도 해야할 일들(환율변동폭의 확대등)이 들어있기도 하므로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오는 6월말,12월말에 각각 제시될 중·장기 개방일정은 우리 경제전체에 미치는 의미와 파장이 길고 깊을 것이다.
그같은 개방이 때로는 「선물」도 될 수 있는 예를 보자.
외국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한도를 늘려주는 것은 현재 말뿐인 CD금리의 실질적인 자유화를 이루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국내은행의 CD금리는 당국이 규제하고 있으나 외국은행의 CD금리는 실질적으로 자유화되어 있는데 외국은행의 CD발행규모가 작을 때라면 몰라도 앞으로 규모가 커지면 지금같이 우스꽝스러운 절름발이 금리규제를 더이상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CD의 확대는 나아가 현재의 통화관리방식 자체와 금리구조 전체의 재편을 위한 활발한 토론과 대응을 촉발시킬 것이다.
은행감독규정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외국 금융기관이 가만히 있었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서둘러야 할 일이고 이점에서는 환율변동폭의 확대나 외환거래 실수요증명제의 완화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현재의 감독규정상 어디까지가 주력업체와 관계있는 업종이고 어디부터가 관계없는 업종인지는 명확지 않다. 결국 주거래은행이 알아서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식이다.
누구나 증권시장만 풀리면 금리도 떨어지고 자금도 잘 돌아갈텐데 하면서도 외국금융기관 국내지점이 주식투자를 할때 이제서야 「내국민대우」를 해주겠다는 것도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적」아닌 「거주」기준은 국제적인 공통기준이기도 할 뿐더러,남들이 다들 「아시아 제2의 시장이 될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는데도 「단물만 빼먹고 튀겠지」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금리의 숨통을 죄어왔다.
어느 나라의 금융개방이 그 나라 경제의 확실한 안정을 전제하지 않고는 도리어 경제를 망치기 십상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낮은 물가와 낮은 금리,낮은 환율로 대표되는 우리 경제의 안정을 이루는데 먼저 힘쓰는 것이 순서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외환거래를 규제하고 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고 있어서는 어떻게 금리를 낮추어가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될 판인 것이다. 한 예로 은행장 인사를 앞두고 금융협의회를 열어 금리인하의 성과를 보고토록 하거나 은행의 공공성을 앞세워 마진을 줄이라고 해서 금리를 낮추는 것과,은행끼리 은행원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경쟁을 통해 금리를 낮추는 것중 어느 것이 더 견고한 금리인하의 길일까.<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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