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능력 따라 달라지는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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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향의 소리」를 내건 네번째 교향악 축제(2월15∼3월17일·예술의 전당 콘서트홀)가 전국 18개 교향악단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주제에서 말해주듯 서울에 사는 각 지역 연고자들에게 고향의 봄 소리를 들려주어 동향인으로서의 긍지와 애향심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음악잔치였던 셈이다.
국내 교향악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이 행사의 돋보이는 기획의도에 비해 이번 참가단체들의 프로그램은 종래와 다름없이 전체적으로 고전과 낭만음악이 주류를 이뤄 진부했다. 또 서곡-협주곡-교향곡으로 규격화된 틀을 아직껏 벗어나지 못해 구태의연한 인상을 주었다. 이제는 교향악단마다 지역적 특색을 마음껏 살릴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대체로 기대했던 단체(수원시향·부천필·KBS교향악단)는 기대에 밑돌았고 의외로 일부 지방교향악단(부산·전주·광주시향과 충남교향악단)이 설득력 있는 음악을 보여주었다.
구 소련출신 지휘자 노만코프만이 이끈 서울 심퍼니는 실력 있는 객원 지휘자를 맞아 특별히 돋보였다. 지휘자의 능력에 따라 같은 교향악단이라도 연주수준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노만 코프만과 서울 심퍼니가 이번 축제에서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또 상당수의 국내지휘자들이 고도의 지휘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도 문제려니와 레퍼터리의 빈곤도 심각한 상황임을 드러냈다. 18회에 걸친 연주에서 작곡가 27명의 작품 55곡 가운데 국내작곡가의 작품이 단 한곡(백병동『진혼곡』)뿐이었다는 것은 한국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 상실 그 자체라 할만하다. 한국교향악단들을 객원 지휘한 외국지휘자들이 예외 없이 자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한두곡씩은 연주곡목에 포함시킨 사실에서 국내지휘자들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이번 협연자들 중에는 상당수의 신예들이 포함돼 신선감을 주었다. 그러나 일부 중견연주자들(바이얼린 김민·김남윤, 호른 김영률 등)은 자기 나름의 연주철학 부재와 매너리즘에 빠진 연주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만한 경력의 중견연주자들이라면 그저 기계적·감각적인 연주를 넘어 좀더 지적인 음악예술을 위한 미학적 접근 노력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편 일부 협연자들의 배경과 시욕과 맞물린 유명인사들의 대형 화환세례도 꼴불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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