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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클로즈업] 朴도사 "벌 한마리 날린 뜻 알겠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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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사가 갑자기 나에게 날려보낸 벌 한 마리. 나는 붕붕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그 벌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땀을 뺐다. '벌 한 마리' 화두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가. 벌 이야기는 선가(禪家)에서 회자되는 선문답이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공부하였으며, 이판 사판 양쪽에 모두 뛰어났던 경산(京山.1917~1979)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 그 설명이 나온다.

중국 복주 교령사에 신찬선사(神贊禪師)가 있었다. 어려서 은사를 따라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경전공부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자, 깊은 산으로 들어가 잠적하였다. 이윽고 10년 만에 헌 누더기 옷을 걸치고 옛날 은사를 찾았을 때 은사는 여전히 경전만 읽고 있었다. 어느 봄날 신찬선사는 은사 스님을 모시고 방에서 문을 열어 놓은 채 앉아 있었다. 그때 벌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요란스럽게 날아다니다가 문창에 탁탁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신찬선사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空門不肯出 열어 놓은 창으로는 나가지 않고

投窓也大癡 창에 머리를 부딪치니 정말 어리석구나

百年古鑿紙 평생 동안 고지(古紙)를 뚫은들

何時出頭哉 어느 때나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오!

이 시는 벌의 우둔함을 노래한 것이지만, 사실은 '책만 본다고 도를 깨우치겠느냐'고 옛 스승의 우둔함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게송이었다. 제산이 1천7백 화두 가운데 하필 이 화두를 나에게 던진 이유는 무엇이었겠는가?

참고로 필자 사주를 보면 태어난 날이 병진(丙辰) 일주에다가 인(寅)이 2개 들어 있다. 병(丙)에 대해서 인(寅)은 문곡성(文曲星)이자 학당(學堂)으로 작용한다. 문곡성은 북두칠성 가운데 하나로서 학문을 상징한다. 학문은 학문인데, 살아서 빛을 보는 학문이 아니고 죽고 난 뒤에 빛을 보는 학문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경영학이나 법학.의학을 하면 살아서 빛을 보지만, 주역이나 음양오행 같은 분야는 살아 생전에는 별로 영양가가 없는 음지의 학문에 해당한다. 반대로 문창성(文昌星)은 살아서 빛보는 학문을 암시한다. 따지고 보면 내 팔자에도 문곡성이 있었으니까 그 많은 분야 가운데 하필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학당은 선생팔자라는 뜻이다. 문곡성과 학당이 2개씩이나 들어 있는 사주이니까 이 친구는 책을 많이 보았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하나 덧붙이자면, '목화통명(木火通明)'이 작용한다. 팔자에 목과 화가 많으면 통상 분석력이 좋다고 해석한다. 병(丙)은 화이고, 인(寅)은 목이다. 활활 타는 불에다가 장작을 자꾸 들이밀면 그 불이 더 타기 마련이다. 그런 사주를 목화통명격이라고 부른다. 무인보다는 문인들에게 이 사주가 많고, 문인 가운데서도 복잡한 사안을 간단하게 압축하고 정리하는 신문사 칼럼니스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그 대신 성질이 급해서 자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화투를 치다가 고도리 원단이 들어오면 곧바로 얼굴빛이 변하므로, 돈 따기는 틀렸다. 어찌됐거나 목화통명인 필자도 '강호동양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지 않은가.

박도사는 나와의 첫 대면에서 여덟 글자를 스캐너로 획 하고 한번 긁어보고 나서 벌을 날렸음에 틀림없다. 벌 화두의 요체는 구멍이다. 네가 들어온 구멍을 찾아서 다시 그곳으로 나가야 한다. 생과 사가 같은 구멍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들어온 구멍을 천착해야 함은 물론이다. 들어온 구멍은 논리 가지고는 접근할 수 없는 심연(深淵)과 같다. 화두도 잡아보고, 호흡도 해보고, 기도에도 빠져 보아야 한다. 요는 논리라고 하는 활주로를 쭉 따라 가다가 어느 순간에 이륙(take off)을 해야 하는데, 그 테이크 오프가 쉽지 않다. 필자를 포함해서 이 세상의 멍청한 자들은 끝까지 활주로만 구르다가 하늘에는 한번도 떠 보지 못하고 죽는 것 같다.

벌 화두로 필자의 야코를 죽인 다음 제산이 내놓은 카드는 한 권의 필사본 책이었다. 제목을 보니'성명규지(性命圭旨)'라고 써 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이 이런 책도 가지고 있었나?' '성명규지'는 도가의 일급 비서이다. 중국 명대의 도사들이 단학을 수련할 때 참고하던 내단서(內丹書)로서, 유.불.선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도 이 책은 도교전공 학자들 몇몇이나 알고 있을 뿐 일반인은 잘 모르는 책이다. 여기서 성(性)은 불교의 주특기로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命)은 도교의 주특기로서 호흡법을 통하여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법이다. 성만 닦고 명을 닦지 않으면 지혜는 밝지만 몸이 아프고 신통력이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명만 닦고 성을 닦지 않으면 몸은 1백살 넘게 장수할지 몰라도 무아(無我)의 지혜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불교의 장점과 도교수련의 장점을 모두 겸비해야만 진정한 도인이 된다는 입장이 성명쌍수이고, '성명규지'의 주장이다.

그날 두 사람 사이의 대화 가운데 사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4~5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금의 기인.달사들에 관한 일화들을 유쾌하게 주고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는 '성명규지'의 출처는 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출처에 의문을 갖고 있다가 최근에 제산의 친동생인 박광춘(朴光春.60세, 현재 서울 연희동 거주)씨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았다. 소개하면 이렇다.

박광춘이 중학교 다닐 무렵인 1950년대 후반 늦가을 어느 날에 함양 백운산 입구의 영암사(靈岩寺)를 찾아갔다. 형인 박광태(박도사의 호적명)가 당시 영암사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형에게 쌀 열 되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박도사는 동생에게 '오늘 내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다'고 하였다. 얼마 후에 과연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왔다. 옷은 한복을 입었고, 얼굴빛은 노인인데도 불구하고 대춧빛처럼 홍조를 띠면서 반짝거렸다. 머리칼도 검었다. 그 시간은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고, 비가 퍼붓는 날씨였다. 우산도 없었지만 그 노인의 옷은 빗물이 묻어 있지 않았다. 박도사는 동생을 그 노인에게 간단하게 인사시키고 나서 너는 옆방에 가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면서 귀에다 대고 '오늘 선생님 신발을 들여다보아라'고 속삭였다. 박광춘은 형 말대로 그 노인이 신고 온 흰고무신의 밑창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흙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그 빗속을 통과해서 왔는데도 불구하고 신발이 깨끗하였던 것이다.

형님과 두어 시간쯤 이야기하던 그 노인은 갈 때도 어둠을 뚫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박광춘씨는 보름 전에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40년 전에 들여다보았던 그 노인의 흰 고무신에 흙이 하나 묻어 있지 않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노인은 충청도 사람으로서 성씨가 윤씨였으므로 윤선생님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윤선생은 축지법을 사용하던 신선이었던 것이다. 박도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선생은 바로 이 윤 신선이었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 '강호동양학'의 필자 조용헌 교수가 EBS-TV에서 지난 8일부터 '조용헌의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전통 명문가들의 지조와 청렴성, 남을 돕는 자세 등을 다룬 강의는 내년 1월 초까지 매주 월.화.수요일 저녁 9시부터 30분간 방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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