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지 소 극비문서 인용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에 떨어져 안터진 제3의 원폭 있었다”/일서 수거 소에 넘겨 핵개발 결정적 기여… 미선 부인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중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은 지금까지 알려진 2개(히로시마·나가사키)가 아니라 3개였으며 불발된 제3의 원폭을 일본이 소련군에 넘겨 소련의 핵무기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지는 2일자 최신호에서 지난 79년 소련 공산당중앙위에 제출된 극비문건을 인용,이같이 보도했다.
모스크바의 소련군사전문가인 이고르 모로소프 기자가 최근 입수,공개한 이 문건은 1945년 8월 일본 관동군의 항복과정에서 일본어 통역장교로 근무했던 표트르 이바노비치 티타렌코(당시 대위·90년 사망)가 작성한 것이다.
7페이지에 달하는 이 문건에서 티타렌코는 자신이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45년 당시 만주주둔 로디오 말리노프스키 원수의 사령부에서 통역으로 근무했던 그는 8월19일 이반 아르초멘코 대령의 통역으로 일본 관동군에 항복조건을 건네준데 이어 다음날인 20일부터는 장춘주둔 미하일 코발료프상장 휘하부대에서 일본군의 항복조건 이행여부를 감시하게 됐다.
이때 다케다로 기억되는 일본군 대좌가 그에게 나가사키에 투하됐으나 불발된 제3의 원폭을 일본이 보관하고 있으며 이를 소련에 넘겨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그 일본군 대좌는 『만일 미국이 원자탄 독점 보유국이 되면 일본은 영원히 미국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소련도 원자탄을 보유하게 되면 멀지않은 장래에 일본이 다시 열강대열에 낄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한편 당시 미국의 원폭개발을 위해 「맨해턴계획」을 연구해온 리처드 로드는 당시는 플루토늄이 매우 귀해 미국이 제3의 원폭을 투하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맨해턴계획에 직접 참여했던 에드워드 텔러등 전문가들도 「제3의 원폭설」을 어불성설로 단정하고 이를 미국 혹은 소련 정보기관의 교란작전일 가능이 많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 미국이 원폭투하에 쓰인 B­29폭격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원폭투하 수주전부터 펌프킨(호박)으로 불리는 초대형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는데 이것을 일본사람들이 원자폭탄으로 오인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제3의 원자폭탄 투하주장이 사실인지는 알수없지만 소련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지 불과 4년만인 1949년 8월29일 첫 원폭실험에 성공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