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눠 쓰자” vs “왜 남주나”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된 지방세 논쟁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번 4월 임시국회 본회의 상정 안건 중 초미의 관심사는 지방세 일부 개혁안 통과 여부다.

▶공동세안에 대해서는 강남 주민들의 반발도 심하다. 강남권 곳곳에 공동세안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논쟁 중인 지방세 개혁 안건은 크게 두 가지다. 열린우리당에서 내놓은 ‘세목 교환’과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이 제시한 ‘공동 재산세(이후 공동세) 50% 안’. 세목 교환은 서울시 세목인 담배소비세, 자동차세, 주행세 3개 세목과 자치구세인 재산세를 서로 맞교환해 자치구 간 세수 격차를 해소하자는 방안이고, ‘공동세 50%안’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재산세의 절반을 서울시가 걷어 25개 구에 균등하게 나눠주자는 제안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는 반발하고 있다. 세목 교환과 공동세 안 어느 것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강북(노원·도봉·중랑·도봉)에서는 세금을 나눠 세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모(서울시)가 자식 걱정이 태산이다. 첫째(강남권)는 돈을 잘 벌고 둘째와 셋째(강북권)는 가난하기 때문이다. 부모 심정은 자식들이 모두 잘사는 것이다. 그래서 잘사는 첫째에게 둘째와 셋째 동생에게 돈을 좀 나눠주라고 했다. ”

“둘째와 셋째가 못산다고 만날 첫째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식이 못사는 건 부모 책임도 크다. 부모는 나몰라라 하고 왜 첫째만 희생해야 하나. ”

“부모는 세 자식 중 유독 첫째에게 집중 투자(강남 개발)했다. 둘째와 셋째에게 줄 돈을 첫째에게 다 쏟아부었으니 혜택을 받은 첫째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서울시 자치구의 세수 격차 완화를 위해 마련된 공동세 안에 대한 강남북 간 논쟁이 뜨겁다.

부모(서울시)는 가난한 자식들(강북)을 돌볼 여력이 없다 하고, 첫째(강남)는 못 사는 형제(강북)들을 언제까지 돌봐야 하느냐고 투덜대고, 가난한 자식들(강북)은 부모로부터 혜택을 못 받았으니 부모도 좀 돕고, 돈 많은 형도 도와야 한다는 데 뭐가 잘못이냐는 것이다.

이 논쟁은 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시점부터 12년간 지속돼 왔다. 그동안 다양한 개혁안이 논의됐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단 하나. 이해관계가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95년 11월. 정부 차관회의에서 시세인 담배소비세와 자치구세인 종합토지세(이후 종토세)의 세목 교환 방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나 추진되지 못했다. 이후 97년과 2001년에도 종토세와 담배소비세를 교환하는 방안이 추진된 적이 있으나 무산됐다.

구민을 위한 살림을 하는 구청이 구민 건강을 위협하는 담배소비세로 살림을 운영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토세는 갈수록 세원이 늘어나는 세금이고, 담배소비세는 금연 인구 증가로 갈수록 줄어드는 세원이라 자치구의 반발이 심했다.

이후 2005년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의 발의로 구세인 재산세와 시세인 담배세·자동차세·주행세 등 3가지 세목을 묶어 교환하자는 세목 교환이 거론됐다. 이 안건 역시 재정 여건이 좋은 구들은 재산세를 지키자고 하고, 재정 여건이 어려운 구들은 교환하자는 주장이 맞섰다. ‘공동세 50% 안’은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이 세목 교환의 절충안으로 내놓은 안이다.

김 의원은 “세목 교환은 구 예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재산세 전부를 서울시에 내주는 것이라 지방자치 근간을 흔들게 되지만, 공동세 50%안은 재산세 절반은 구세로 지키면서 동시에 재정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절충안 역시 강남권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강남구의 경우 2007년 예산 4000억원 중 약 3000억원이 세금 수입이고, 나머지 1000억원 중 세외수입이 700억원, 서울시 및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 370억원이다.

세금 수입 3000억원 중 2100억원이 재산세 수입이고, 나머지 900억원이 면허세·사업소세·주차장 특별회계다. 공동세 50%안을 시행하게 되면 1000억원 정도가 공동세에 포함돼 자치구 예산에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공동세안 통과땐 헌법소원”

현재 세목 교환과 공동세 50% 법안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국회 행자위 위원이면서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창일 의원 측은 “아직도 세목 교환과 공동 과세안에 대해 치열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4월 임시국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원칙적이라도 합의를 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합의된 안건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일정 기간을 거쳐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최근 행정자치부는 김충환 의원이 제시한 ‘공동세 50% 안’을 일부 수정한 제2의 공동세 안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김 의원이 제시한 공동세 안은 자치구에서 재산세를 일괄적으로 걷은 후 그 절반을 떼 서울시에 주는 것인데 반해, 행자부의 공동세 안은 아예 처음부터 재산세의 절반은 서울시세로, 절반은 구세로 걷는다는 것이다.

재산세 징수권을 서울시도 갖겠다는 의미다. 김 의원의 공동세 안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구의회에서 반대하면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나, 행자부 제안은 아예 서울시에 징수권을 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국회 논의는 이 행자부 방안까지 함께 거론되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충환 위원은 자신감이 넘쳤다.

“현재 공동세 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부결되려면 출석 인원 과반수의 반대가 있어야 하는데 강남이 지역구인 몇몇 의원을 빼고는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대부분의 의원이 공동세 안을 찬성하고 있어 4월 임시국회 아니면 적어도 6월 임시국회에선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날 기자와 만난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공동 재산세 50%를 밀어붙일 경우 헌법소원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국회에서 마지막 합의 과정이 논의 중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안을 부결시키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29일엔 강남권 구청장들이 ‘공동세 안 결사 반대’의 뜻을 모으기 위한 회동도 있었다. 서초·강남·송파·중구 등 4개 구 국회의원과 구청장, 시·구 의원 등 총 30여 명이 서초구청 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고 행자부에서 진행 중인 공동 재산세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재산세의 50%를 공동세로 전환하면 1700억원 규모”라며 “이를 재정이 부족한 19개 구에 20억∼150억원씩 배분해도 재정자립도가 1∼8% 상승하는 데 그쳐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자치구 간 재정격차 해소를 위해 재산세를 나눠 가질 것이 아니라 서울시에서 교부금의 재원 추가 확보와 국세와 지방세, 시세와 구세 등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국세와 서울시세, 그리고 구세 비율은 ‘80대 18대 2’ 수준이다.

“강남은 개발 때 특혜 받았다”

강남권과 이해관계가 다른 강북 입장은 정반대다. 강남 지역 사람이 누린 특혜를 강북 주민도 나눠가지면서 강남북 간 균형발전을 하루라도 빨리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이노근 노원구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현재 전체 자치구 세금 중 국세와 서울시세로 내는 세금이 90% 이상이다. 국세와 서울시세를 조정해 지역격차를 해소하자는 강남 쪽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남북 간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국세 조정만 바라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국세나 서울시세 조정을 하려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현재 공동세 안을 반대하는 곳은 강남 3개 구를 포함, 4~5개 구뿐이다. 공동세 안이 겨우 결말 단계에 이르렀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리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양한 처방과 조정은 공동세 안이 통과된 이후 하는 것도 늦지 않다. ”

강남은 “강남 개발에 특혜가 없었으니 우리 재산세를 강북에 나눠줘야 할 책임을 못 느낀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남 개발에 특혜가 없다는 말은 소도 웃을 일이다. 72년 제정된 ‘특정 지구 개발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 억제세, 영업세, 등록세, 취득세, 재산세 등을 강남을 포함한 개발 지역에 한해 75년까지 3년간 한시 면제조치를 취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강남은 서울시에 의해 엄청난 인프라 지원을 받지 않았나. 성수대교·영동대교·한남대교·반포대교 건설뿐 아니라 예술의전당·코엑스·잠실운동장이 생겼고 경기고·서울고·휘문고 등 명문고 이전도 이뤄졌다. 법원단지 조성과 상업단지 조성 등 특혜란 특혜는 다 받았다. 강남 땅값 상승의 원인도 중요 시설이 들어서고 상가 조성이 잘 됐기 때문이다. 강남 사람의 부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나. ”

자치구에서 서울시에 재산세를 주고 다시 이걸 서울시로부터 받아가면 자치구에 대한 서울시 통제가 더 심해져 지방자치의 의미가 무색해진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떤가.
“서울시에서 나눠주는 돈은 서울시가 지정하는 게 아니라 배분 방식에 따라 자치구에 일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산집행의 자율권은 자치구에 있다. 간섭이라고 볼 수 없다. ”

강남구와 강북구의 재산세 격차가 13배 차이가 나지만 강북구는 서울시로부터 조정교부금 996억원가량을 받아 실제 차이는 1.8배 수준이지 않은가.
“서울시의 조정교부금만으로 지역격차를 줄이는 건 역부족이다. 강남은 74개 학교에 교육지원 예산이 77억원이나 노원구는 95개 학교에 17억원이 잡혀 있다. 노원구의 경우 시로부터 받는 조정교부금은 대부분 영세민을 위한 사회복지 비용으로 쓰인다. 탈북자, 보훈 대상자, 독거 노인,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데 구 예산의 45%를 쓰고 있다. 강남은 영세민을 위한 예산이 20%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만약 공동세 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서울시의 ‘권한’은 막강해진다. 서울시가 재산세 절반을 추가로 거둬 각 자치구에 다시 나눠주는 것이라 해도 자치구들은 서울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강남권이든 강북권이든 각 자치구에서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 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선 자체 재원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이 가능해야 하는데 오히려 서울시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지루한 밥 그릇 싸움 12년째

부모 덕 안 보고 살았던 첫째마저 둘째, 셋째 돕는 데 허리가 휘어 다시 부모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등록세나 취득세, 주행세 또는 소득세 등 서울시 세목 하나를 뚝 떼어 자치구에 준다 하더라도 이 모두 강남권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아 지역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주장이다. 일단 공동세 안으로 자치구 간 재정 형평성을 높인 후 나중에 조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 강북 개발 등 지역개발 정책으로 형평성을 맞추는 것 역시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지방자치 12년, 2007년 현재 서울시로부터 조정교부금을 받는 구는 전체 25개 구 중 강남·서초·송파 3개 구를 제외한 22개 구다. 진정한 지방차치는 자체 재원으로 운영이 가능해야 하고, 각 지역의 균형발전을 통해 실현된다고 볼 때 아직 갈 길이 멀다. 세목 교환이든, 공동세 안이든 아니면 제3의 대안이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방안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밥그릇 싸움’이 너무 길다.

12년간 밀고 당기는 지방세법

●1995년 정부 차관회의에서 담배소비세(시세)와 종합토지세(구세) 세목교환 방안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나 무산
●1997년 담배소비세와 종합토지세 세목교환 다시 거론됐으나 무산
●2001년 담배소비세와 종합토지세 세목교환 3차 무산
●2005년 재산세(구세)와 담배세·자동차세·주행세 등 세 가지 서울시 세목 교환 방안 나옴(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 서울시 25개 자치구 재산세의 절반을 서울시가 걷어 구에 균등하게 나눠주자는 ‘공동세 50%’안 발의(한나라당 김충환 의원)
●2007년 행정자치부, “세목교환이든, 공동세 50%든 자치단체 균등 발전 위한 방안 마련하겠다”고 발표

박미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