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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FTA와 FBA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그 ‘무한 경쟁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지 이미 오래 전입니 다. 언제 문을 닫아 놓은 적도 없어 비장감 번득이는 ‘제3의 개국’이란 말도 새 삼스럽습니다.

아마도 스포츠는 인간이 곧 상품이고, 그 인간은 다른 재화와 달리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채우려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때 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원조 FTA’는 그에 역행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야구가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자유계약선수(FA)가 아닌 한국과 일본 프로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포스팅시스템(Posting System)입니다.

포스팅시스템은 일본 투수 노모 히데오 때문에 생겼습니다. 10여 년 전 일본에서 해 볼 것은 다해 본 노모가 미국 진출의 뜻을 밝히자 일본계 미국인 에이전트가 나섰습니다. 댄 노무라였습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 아직 FA가 안된 노모에게 은퇴를 선언케 한 것입니다. 결국 노모는 10년(현재 9 년)을 채워야 하는 FA의 그물을 교묘히 빠져나가 LA 다저스에 입단했습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고스란히 노모의 소속팀 긴테쓰의 몫이었습니다 . 최고 투수를 눈 뜨고 공짜로 빼앗겼으니! 사기도 그런 사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게 바로 포스팅시스템입니다. ‘FA가 아닌 선수의 욕망을 부추겨 데려가려는 미국 팀들은 입찰을 해라. 그 중 가장 많은 돈을 써낸 팀에 선수를 주겠다’, 이거였습니다. 올시즌 벽두부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그런 과정을 거쳐 레드삭스가 물경 5111만 달러를 그의 소속팀 세이부에 적어내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메이저리그에 맞서자 프로야구를 보호하려 ‘관세’ 장벽으로 만든 포스팅시스템은 한국도 따랐습니 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우선 메이저리그 팀들의 입찰가가 워낙 떨어져 한국팀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한국 선수들이 서둘러 어린 나이에 미국의 문을 두드린 게 가장 큽니다. 고교 졸업하자마자, 늦어야 대학 중퇴였습니다. 일본과는 아주 대조적 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USA투데이와 인터뷰서 노무라와 일본 프로야 구 관계자가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2년 동안 고교 스타들에게 드래프트에 응하지 말고 바로 미국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감독도, 학부형들도 만나 설득했다. 하지만 별 무소용이었다. 아주 강한 문화적인 것이 있다.” ( 노무라)
“요즘 쇼 나가타란 초고교급 스타가 양키스에서 뛰고싶다며 미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선수들의 ‘엑소더스’로 이어지 진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그들도 다른 10대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 다. 소녀들이 자기를 보고 열광하는 것에 기뻐하고, 20대가 되면 일본에서도 명예 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에 가면 가장 큰 문제가 음식, 친구(특히 여자 친구) 사귀기 등이다. 그것은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관계자 )
한·미 FTA 타결로 경제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양국의 교류가 더 욱 활성화할 것입니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안그래도 몇 년 전부터 메이 저리그가 월드 드래프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리그까지 묶은 월드 리그 등 갖가지 일을 꾸며내고 이뤄내고 있습니다. FBA(Free Baseball Agreement)가 오 지말란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환상에 젖어 무턱대고 태평양을 건너오는 선수, 덩달아 어린 아들을 보내는 부모나 지도자, 그리고 몇 푼 수수료에 눈이 먼 브로커들이 나와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의 추락과 일본 선수들의 성공이 그 이유를 에누리없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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