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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스파르타 갑옷 벗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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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들의 용맹성은 문자 그대로 '스파르타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신생아 중 허약 체질은 들에 내다버리고 일곱 살부터 스무 살 때까지 고통과 결핍을 견디고 명령에 복종하는 불굴의 전사로 양성한 집체훈련 말이다. 교육 내용 역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강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달리기.멀리뛰기.씨름.검술.투창 위주였다. 무용도 배웠지만 싸움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전투 무용이 전부였고, 음악 또한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20세기 들어 전체주의 국가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국민 체력장'이란 것을 실시한다. 황국(皇國)의 건강한 신민(臣民)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다. 옛 소련의 '게테오(GTO.국민체육진흥계획)'를 본뜬 것으로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해 합격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GTO의 배지 대신 휘장을 받았다. 체력검사에 장(章)이란 이름이 붙은 게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 개개인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국방력에 보탬이 못 되는 장애인이나 신체 허약자들을 솎아내기 위한 속셈이 더 컸다. 체력장 종목도 달리기.멀리뛰기.던지기.팔굽혀 펴기.운반하기 등 전투 능력을 측정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체력장은 필연적으로 학교에도 도입된다. 입학시험에 합격해도 체력장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일제에 병합됐던 만큼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복 이후라고 달라진 게 없었다. 그 이름 그대로 한국 땅에서 부활했다. 전투력 측정이라는 취지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70년대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수류탄 던지기' 종목을 기억할 터다. 90년대 체력장이 사라질 때도 군사문화 청산에만 급급했지 학생들의 건강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체력장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모양이다. 교육부가 초.중.고교 체력검사를 과거의 운동(전투) 능력 평가 위주에서 비만 해소와 심폐 기능 강화 등 그야말로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꾼 '학생건강체력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51년부터 시행한 '학생신체능력검사'부터 따져도 그야말로 신체검사의 본모습을 찾는 데 반세기가 넘게 걸린 셈이다. 늦었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체력 측정의 기본이 되는 달리기.멀리뛰기 등은 그대로지만 거기에 유연성과 걸음걸이 검사, 체지방량과 허리.엉덩이 비율 측정 등이 추가됐단다. 측정 결과를 5등급으로 나눠 체육 교사가 개별 학생에 맞는 운동 처방을 해 주고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한다. 스파르타에서처럼 쭉정이를 골라내겠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아우르고 추스르겠다는 얘기다. 모처럼 교육부가 칭찬받을 일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수행평가 등의 방법으로 점수를 매기려는 유혹은 떨쳐야 한다. 그러잖아도 입시 지옥에 숨 막히는 아이들이다. '1㎏ 빠지면 1점' 식의 강요는 아예 그들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부담 없이 건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갖도록 이끌면 그만이다. 자유의 아테네는 후대에 찬란한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했지만 아테네를 이긴 스파르타는 악명 높은 교육 방법만 남겼을 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