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한인 최초 볼쇼이 프리마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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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러시아의 고려인 메조소프라노 루드밀라 남이 5일 새벽(현지시간) 사망했다. 59세. 사망 원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며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최근 4개월동안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루드밀라 남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옛 소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러시아에서 활동했다. 그는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계기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1976년부터 볼쇼이 오페라단의 한인 최초 프리마돈나로 활약했으며 옛 소련의 공훈배우 칭호를 받기도 했다.

루드밀라 남은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한인의 한을 승화시켜 완성도 높은 음악을 펼쳐내 칭송을 받았다.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섰던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 그가 질곡의 민족사를 술회하자 객석과 연주자 모두 울음바다가 됐던 일화도 유명하다.

이후에도 그는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했으며 러시아 내의 각종 고려인.교민 행사에도 활발히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교사 생활을 하다 22세에 하바로프스키음악전문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에 입문했지만 그네신음악원 등을 거쳐 197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풍부한 음량과 세밀한 감정처리, 다양한 음색으로 인정받은 성악가다.

'삶과꿈 싱어즈'의 신갑순 단장은 "한국에서 오페라 카르멘 공연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한국 공연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등 아버지 나라에 대한 정이 상당히 많았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한국에 대한 정 때문에 그는 97년 한해동안 대구예술대학 초빙교수생활도 했다. 이때 러시아 가곡의 진수를 한국 학생들에게 전했다는 평가받았다.

고인은 러시아 유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파티를 열고 현지 적응에 도움을 줬던 인물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베이스 남완 씨는 "한국 학생들을 불러 만들어주던 잡채가 기억난다"며 "음악적으로도 최고의 선생님이었을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루드밀라 남은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한-러 교류축제'공연을 했지만 90년대말 이후에는 건강 악화 때문에 오페라와 같은 큰 무대에는 많이 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 활동에 집중했다. 유족으로는 볼쇼이 오페라 합창단원인 남편과 사업을 하는 아들이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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