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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性범죄자에 '팔찌' 아닌 '발찌' 채울 듯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2009년 4월의 어느 날.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서 A씨가 출감한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의 손에는 007 가방 하나가 쥐어져 있다. 왠지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곧 적응하게 될 겁니다. 만약 허가 받지 않고 떼어내면 다시 수감되니 조심하고….”

교도소 문을 나서기 직전 보호관찰소 직원이 A씨에게 발찌를 채우면서 한 말이 귓전에 맴돈다. A씨의 발목에 채워진 발찌는 위치추적 장치. 이제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어디를 가든 그의 움직임이 관계당국에 포착된다.

‘특정 성폭력범죄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전자팔찌법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상습 성폭력 범죄자의 몸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 됐다.

단말기 개발과 시스템 구축기간을 감안해 내년 10월부터 시행한다. 부착 대상은 ▷강간이나 성추행 등 성폭력 범죄로 두 차례 이상, 3년 이상 징역형을 받은 사람 중 출소 후 5년 안에 재범을 한 사람 ▷수차례의 성폭력 범죄로 상습성이 인정된 사람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자 등이다. 이들 중 형을 마치거나 가석방된 뒤 다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을 때 검사가 장치 부착을 청구한다. 법원은 5년의 범위 안에서 기간을 정해 부착 명령을 내린다. 단, 19세 미만에게는 달 수 없다.

악성 성범죄자 몸에 채워질 소형 전파발신기는 전자팔찌로 알려져 있으나 ‘전자발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률에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 손호철 입법조사관은 “착용 여부를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라는 취지”라면서 “쉽게 드러나는 손목보다 발목에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신체 어느 부위에 착용시킬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장치가 처음 나온 미국에서도 발찌 쪽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미국과 달리 공중목욕탕 이용 등 공동체 문화가 강한 한국에선 생활에 불편이 있을 수 있다.

법무부는 장치를 도입할 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기기값 70만~100만원, 사용료 5만원의 고가라는 단점이 있지만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작동 방식은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비슷하다. GPS 위성에서 발사한 전파를 휴대전화 모양의 수신기로 받는다. 수신기는 발목에 채워진 전파발신기에서 나오는 시그널(신호)도 함께 받아 보호관찰소 관제센터로 보낸다. 관제센터에는 발찌 착용자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특히 수신자료 모니터링 결과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의심될 때는 관제센터에서 검찰에 알린다. 또 유치원, 학교, 피해자 거주지, 술집 등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체크돼 경고음이 울린다.

법무부 보호국 김병배 사무관은 “별도의 주거용 수신기를 통해 언제 집 바깥으로 나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이사를 하거나 출국하려면 보호관찰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치를 몸에서 떼거나 망가뜨리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경우 12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징역 후 평생 위치추적장치를 채우도록 하는 법률이 2005년 시행됐다. 텍사스주의 댈러스에선 감시 대상자들에게서 1인당 450달러(42만원)씩 비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전자발찌 방식을 변형해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사건에도 활용하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송ㆍ수신기를 착용토록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즉각 경찰이 출동한다. 또 정해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전자장치를 통해 원격으로 약간의 전기쇼크를 가하는 장치가 개발돼 있다.

권석천 기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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