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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회화의 명작 이징의 『난죽병』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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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기록을 통해서만 알려져 온 「문헌상의 명화」허주 이징의 『난죽병』이 최근 발굴되어 처음 공개된다.
『난죽병』은 조광조의 『정암집』, 김상헌의 『청음집』, 정온의 『동계집』등 16∼17세기 당대의 문인들 글 속에 나오는 유명한 그림으로 실제작품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는 27일부터 3월7일까지 학고재화랑에서 열리는 「조선후기 그림과 글씨」전에 출품된다.
이 작품을 고증한 미술평론가 유홍준씨(영남대교수)는 『조선후기 회화의 기념비적 명작으로 조선시대 사군자화풍의 변천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난죽병』은 원래 8폭이었으나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그림 5폭과 발문1폭등 6폭으로 꾸며져 있어 그림 2폭이 낙질된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문헌에 따르면 이 작품에는 구구 절절한 내력이 담겨있다.
조선조 중종때 문신으로 기묘사화때 조광조와 함께 변을 당했던 강은(생몰미상)은 당시의 화가 윤언직(생몰미상)이 그린 8폭 『난죽도』를 갖고 있었는데 정암 조광조(1482∼1519)가 이 그림에 8수의 오언절구를 지어 덧붙여줌으로써 강은은 이를 더없이 귀중한 가보로 간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후 조광조의 증손 며느리인 유씨가 이 작품을 복원시킬 계획을 세웠다. 마침 조수륜과 김의원이라는 두 선비가 옛날이 병풍에서 보았던 조광조의 시 8수중 7수를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씨는 증조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손수 비단을 까 화폭을 마련하고 당세에 화가로 이름난 허주 이징(1581∼?)을 초빙해 난죽그림을 그려 받고 조광조의 시를 당시의 명필 이현의 단정한 해서로 채웠다. 또 복원하지 못한 한 폭에는 그림 대신 이 병풍제작의 유래를 밝힌 발문을 넣었다.
이리하여 옛날 윤언직외 8폭 『난죽병』은 후손들에 의해 새로운 『난죽병』으로 복원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 『난죽병』의 발문에도 자세히 나와있고 훗날 편찬된 조광조의 『정암집』과 정온의 『동계집』등에 나타나있다.
이 『난죽병』을 그린 이징은 인조때 활약한 궁정화가로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 이 때문에 그의 난초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화첩 속에 소품 두점이 전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선조 대나무 그림은 회화사상 상당히 비중있는 장르였으나 명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선조때 화가인 탄은 이정(1541∼ ? )이전에는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또 이정 이후 1백여년 동안 대나무그림을 갈 그렸거나 이를 전문적으로 그린화가도 없어 숙종·영조때 화가인 유덕장(1694∼1774)에 와서야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징의 대나무 그림은 바로 그 중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난죽병』에 나타나는 이징의 난초와 대나무그림은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조맹반·정사초풍으로 단정하고 품위있는 절제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이 『난죽병』은 사업가 전모씨가 30여년전 조광조의 후손으로부터 구임해고 최정우씨(미술사학자)에게 감정 받아 비장해오던 것이다.
이 작품을 살펴본 안휘준씨(서울대 박물관장)는 『조선조시대 회화사를 연구하는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고『작품이 크고 수준이 높아 문화재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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