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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 ‘최후의 만찬’ 끝났나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부동산 시장이 ‘시계 제로’ 상태다. “조만간 하향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부동산 버블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 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가계발(發)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비관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버블이 붕괴된다면 그 삭막한 상황을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인 와타나베 다로(45)는 하루 6시간을 ‘출퇴근’에 허비한다. 시즈오카(靜岡)현에서 회사가 있는 지바(千葉)현까지는 지하철로 3시간이 걸린다.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긴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와타나베는 1989년 결혼하면서 시즈오카현 인근 시골 마을에 25평짜리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주택 구입 자금으로 5000만 엔이 들었는데, 자신의 저축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 그리고 은행 융자를 합쳤다. 문제는 4000만 엔에 달하는 은행 빚이었다. 이른바 ‘버블 막차’를 탔던 것.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면서 그의 아파트는 현재 구입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그의 회사는 도쿄 한복판에서 지바현 시골 구석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부푼 꿈으로 마련한 보금자리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위에 평생 동안 빚을 갚아도 못 갚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자위하며 오늘도 고단한 지하철에 오른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서울 강남에 사는 김태균(65·가명)씨도 ‘와타나베의 고통’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다 명예퇴직한 그는 99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을 샀다. 월 250만원대의 연금 생활자인 그는 종합부동산세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은마아파트 34평형 공시지가는 지난해 6억8000만원에서 올해 10억원대로 올랐다. 이에 따라 김씨가 내야 할 종합부동산세는 460만원 정도 된다. 지금이야 아주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2017년까지 보유세는 계속 올라가게 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강남 사람들, 세금 고지서를 받아 보면 어이쿠 하게 될 거다’고 했는데요. 그 말이 새삼 떠오르더라고요. 지금은 이사 가기도 힘듭니다. 양도소득세 내고 나면 별로 손에 쥐는 것이 없는 데다 분당이나 과천 같이 이사갈 만한 곳도 집값이 엄청나게 뛰어서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를 구하기 어려워요.”

김씨는 “3∼4년 안에 내야 할 보유세가 두 배 가까이 오른다”며 “현재 집을 내놓아야 할지 아닐지 고민 중이다”고 털어놓는다. 연금 말고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김씨에게 1000여만원의 보유세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파트값이 꺼지고 있다. 지난해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서울 강남·송파·목동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값이 올 들어 최고 2억원 이상 빠지는 등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최근 공개한 아파트 실거래가를 살펴보면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13평형(4층)은 지난해 12월 7억8000만원에서 2월에는 7억원에 팔렸다. 또 서초구 반포동 AID차관아파트 22평형(3층)도 지난해 11월 11억1000만원 선까지 거래됐지만 2월에는 10억원에 매매됐다. 금싸라기 같은 아파트들이 최고 1억원 이상 값이 빠진 것이다.

거래 건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은 1월 한 건의 거래가 있은 이후 아예 거래 신고가 없었다. 지난달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 건수는 90여 건에 불과하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이후 가격 상승폭이 높았던 단지들의 하락폭이 컸다”며 “보유세 부담으로 3월 실거래가도 하락세가 계속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 확대와 보유세 부담 증가, 대출 규제 등 부동산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가격이 최고 60%까지 오르면서 ‘세금 폭탄’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국 서일대 교수는 “시장은 충격적으로 얼어붙었다. 당분간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옥죄기’ 정책이 전방위적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1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금리 인상→지급준비율 인상→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으로 ‘돈줄’을 막았다. 여기에다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내역 공개를 뼈대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예정돼 있다.

이런 와중에 부동산 버블 붕괴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계 빚이다. 시장이 얼어붙는 가운데 지난해 1인당 개인 빚이 1400만원에 이른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한국은행은 ‘2006년 자금 동향 자료’를 통해 “지난해 12월 말 현재 개인 부채 잔액이 671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005년 말(601조6000억원)보다 70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국민 1인당 금융 부채로 환산하면 1390만원에 달한다. 2005년(1250만원)에 비하면 불과 1년 새 국민 1인당 부채가 140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2002~2004년에는 해마다 1인당 40만원 정도 완만하게 늘어났지만 ‘부동산 광풍’이 시작된 2004년 이후부터는 주택담보대출 급증 등의 영향으로 큰 폭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개인의 부채 상환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콜금리와 지급준비율 인상 여파로 대출 금리가 오르는 추세여서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에게는 ‘해답’이 없다. 가계발(發) 부동산 버블 붕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파트값 급등→가계 대출 증가→경기 둔화로 가계 부담 증가, 채무 상환 능력 불능→아파트값 폭락→금융 시스템 붕괴→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버블 붕괴 시나리오에 힘이 실린다. 급등한 가계 부채가 버블 붕괴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버블 꺼지면 일본 보다 충격 클 것”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보유자의 50% 이상이 부채에 얹혀 있다. 가계 부문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지금같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는다면 내년께 급격한 버블 붕괴를 겪을 것이고 2~3년은 고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소비 위축과 중산층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무리한 금융정책을 통해 집값을 잡으려다 우리도 일본식 거품 붕괴를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악재는 또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 미국의 부동산 시장 급락은 우리나라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일본 전문가인 정안기 고려대 교수는 “개인 자산의 80%가량이 부동산에 몰려 있기 때문에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질 경우 일본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도쿄에서 부동산 연구를 해온 송현부 일본부동산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제는 시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3개월마다 바뀌는 정책’을 어떻게 믿겠나. 재건축 규제를 풀고 무리하게 책정된 양도소득세도 확 줄여야 한다. 시장을 왜곡해선 문제를 풀 수 없다. 일본의 10년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이상재, 최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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