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윤 교수 서울대경제학과(고금리 어떻게 풀어야 하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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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정적 통화정책·재정운영이 열쇠/기업 금융수요 체질개선 병행돼야
기업들은 고금리로 더이상 장사를 못하겠다고 야단이다. 현재의 높은 금리현상이 치유되지 않으면 수출경쟁력을 갖추기란 정말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나 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금리인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자들의 견해를 들어본다.<편집자주>
정부는 지난 22일 금융기관들의 금리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이른바 금융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이는 기업대표들이 대통령을 면담해 금리인하를 호소하고 대통령이 재무장관에게 금리인하방안의 강구를 지시한데 따른 것으로 짐작된다.
불과 2개월여전에 역사적인 금리자유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마당에 정부가 금융기관들의 금리를 다시 강제적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인 만큼 금융기관들의 협조를 기대하는 일종의 고육지책을 이같이 강구하게 된 것에 대해 정책당국의 고충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금융협의회는 금융기관의 경영책임자들과 정책당국이 매월 직접 만나는 기회이므로 이것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체질개선노력의 산실로서 가능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이 협의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어야할 것은 주로 두가지 문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는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경영지도능력을 강화하여 자금배분의 효율화와 사후관리의 철저를 기함으로써 우리경제의 자금흐름을 개선하는 문제고,다른 하나는 서비스의 개발과 개선을 통한 수수료 수입의 증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비절감등 금융기관경영의 혁신적인 효율화에 의해 예대마진을 축소하는 문제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의 이같은 노력만으로 고금리를 포함한 우리의 고질적인 금융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물가안정과 국제수지개선을 위한 정부의 확고한 정책의지와 금융수요자인 기업들의 금융수요체질개선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고금리는 90년(9.0%)과 91년(8.6%)의 경제성장률이 우리 경제의 능력,즉 잠재성장률(7∼8%)을 상회함으로써 물가상승률이 90년 9.4%,91년 9.5%의 높은 수준에 이른 것에 원인이 있으며,이같은 과성장과 고물가의 중요한 요인은 89∼90년의 과잉통화공급과 재정팽창이다.
통화증가율의 제고는 일시적으로는 금리하락을 가져올 수 있으나 물가상승률을 높여 결국 금리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며,재정팽창은 균형예산이더라도 민간저축을 감소시켜 금리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안정적인 통화정책과 절도있는 재정운영은 금리안정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안정화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방향에 적응하는 노력을 병행시켜야 한다. 고금리가 지속되면 기업들은 정부에 대하여 인위적인 금리인하를 요구하기보다는 투자계획을 축소하고 부실사업을 정리함으로써 자금수요를 줄이고 부채를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고금리에 대한 기업들의 이같은 적응이 금리를 하락시키는 가장 강력한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투자축소와 사업정리가 실업의 증가를 초래할 것을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실업률이 정부계획에서 처럼 91년의 2.3%로부터 92년의 2.6%로 상승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제수지를 개선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게 된 것이 현재 우리경제의 상황인 것이다.
최근의 고금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금리가 선진국보다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물가상승률이 높기 때문이며,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도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을 보여온 것은 고도성장과정에서 기업들의 투자수익률이 높았기 때문이며,더구나 부동산투자의 수익률만 하더라도 고금리를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발초기가 아니고 특히 고금리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투자수익률이 과거처럼 높을 수가 없고 최근의 부동산 동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동산투자수익률도 낙관적이지 않으므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는 금리수준에 따라 자금리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부채규모도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경영을 해야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정부의 안정적 통화정책과 절도있는 재정운영,금융기관들의 합리적인 자금배분과 엄격한 사후관리 및 혁신적인 경영효율화,그리고 기업들의 금융수요체질의 획기적인 개선노력이 어우러져 적정성장­물가안정­금리안정의 선순환이 조속히 도래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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