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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T 토플 접수 '하늘의 ★ 따기'

중앙일보

입력


외국어고를 준비중인 강모(16·중3)양은 4월 중순 필리핀에서 토플 시험을 치른다.
응시생 수가 워낙 많아 국내에선 원하는 날짜에 시험을 치를 수 없어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강양은 "외국어고에 지원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토플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불평했다.
국내 토플시장에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토플시험 응시를 위한 해외원정 붐이 일고 있는데다 해외 원정 토플 상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2박3일을 기준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지만 이달 시험 예약은 벌써 마감됐다. 강남 일대 학원에서는 학원생을 대상으로 토플원정대를 꾸리고자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국제중 입시를 준비하는 양모(13·초6)군은 지난달 대만으로 토플 원정 여행을 다녀왔다. 양군은 "겨울 방학 동안 토플 공부에 집중했는데 시험에 응시도 못해 공염불이 될 지 몰라 속이 탔다"며 그 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학부모 김모(43·여)씨는 "해외까지 학생들을 직접 인솔해 주는 학원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라며 "학생·학부모의 피 마르는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고 분을 삭였다.
'토플권'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토플 시험 권한을 양도한다는 뜻이다. 인터넷을 통해 수험생들끼리 응시에 성공한 아이디를 사고 팔때 쓰는 말이다. 접수에 성공한 아이디는 정상 응시료에 비해 많게는 2배 가까운 값에 거래된다. 유학을 준비하는 박모(22)씨는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수십만원의 웃돈이 오간다"며 "토플시험 응시 기회를 갖는 것도 능력이 된 세상"이라며 신세를 한탄했다.

◇응시자 봇물=토플 대란의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넘치기 때문이다. 토플시험 국내 응시자는 연평균 10여만명. 미국 ETS가 공개한 2004~2005년 토플 시험 분석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토플 응시인원 55만4942명 가운데 10만2340명이 한국인이다. 전체의 18.5%로 다섯명 중 한명 꼴로 한국인이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 수준.
이지외국어학원 정랑호 원장은 "상위권 대학 수시 전형과 유명 기업체 입사 지원때 토플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토플의 인기가 높은 것"이라며 "게다가 특목고 입시에서도 토플 성적이 반영돼 초.중학생의 응시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해외 대학 진학뿐 아니라 국내 국제중·고 진학을 위한 토플응시 분위기도 꿈틀대고 있다. 한미교육위원단 제임스 라슨 부단장은 "한국에서는 토플 시험을 자가 평가의 개념으로 여러 번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응시연령도 점점 어려지고 있어 가수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자란 시험장소=지난해 9월 토플 시험 주관사인 ETS가 시험 방식을 인터넷을 활용한 IBT(Internet Based TOEFL)로 바꾸면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인원이 크게 줄었다. 시스템에 걸맞은 설비를 갖춘 시험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미리 다운로드 받아 시험문제를 푸는 CBT 방식과 달리 IBT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미국 측 서버에 접속해 실시간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PC를 활용한 CBT(Computer Based TOEFL)방식이 하루에 두 세 번 정도 시험을 치렀다면 IBT는 한달 2~4차례만 가능하다. 게다가 회당 900~1000명만이 응시할 수 있어 응시수요에 맞추기도 벅차다. 응시인원이 CBT 방식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그 탓에 토플 시험 가수요 분위기는 이상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만큼 시스템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숙명여대에서 치른 시험에서 인터넷이 끊기는 소동이 벌어진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한미교육위원단 측은 "인터넷 환경이 좋은 시험장소를 구하는 게 관건"이라며 "공간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학을 준비중인 정모(여·24)씨는 "인터넷 접수는 미국 시각에 맞춰 사전예고 없이 갑자기 이뤄진다"며 "언제 접수창이 뜰지 몰라 친구들과 돌아가면서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자리 부족은 물론 접수방식까지 곳곳에 문제투성이어서 응시생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대안은 없나=토플 응시료로 미국에 내는 돈은 매년 130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교재비·수강료 등 기타 교육비를 포함하면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빨아먹는 하마가 토플시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부주관 영어능력평가시험이 전무한 실정이다.
기껏해야 학교 등 관련 기관에서 개발한 시험이 고작이다. 서울대의 텝스(TEPS)와 한국외대의 플렉스(FLEX), 대입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이 만든 토셀(TOSEL)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일부 대학 입시에만 반영될 뿐 활용의 폭이 좁아 공인검증 영어시험의 대세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토플을 대체할 수 있는 정부공인 영어평가시험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성균관대 어학원장 김동욱 교수는 "분야별로 검증된 수준의 영어시험이 다양하게 개발된다면 지금의 사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공인 영어평가시험 도입을 위한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을 포함해 여·야 의원 19명이 지난달 초 공동발의한 법안이다. 영어교육 혁신방안을 담은 '영어교육진흥특별법(안)'이다.
신 의원은 "일본의 스텝(STEP)이나 중국의 씨이티(CET)처럼 정부가 나서서 우리 형편에 맞는 영어평가시험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남진(35·회사원·서울 마포구)씨는 "직장인도 해외 연수를 가려면 우선 토플시험부터 봐야 된다"며 "언제까지 토플시험에만 매달려야 할 지 답답한 노릇"이라고 한숨 지었다.

프리미엄 라일찬 기자

<토플시험 국내 응시자 추이>
2000~2001년 8만3000 명
2004~2005년 10만2000명
매년 130억원 유출
자료 : 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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