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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때도 근대화 있었지만 수탈 위한 것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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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의 식민지 시대와 근대화 성취와의 관계를 보는 시각은 크게 '식민지 수탈론'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립한다. 지금까지 우리 학계의 주류 시각은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를 강조하는 '식민지 수탈론'.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식민지 근대화론'의 거센 공세가 지속되는 실정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시대에 우리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두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정태헌(49.사진)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최근 출간한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선인) 을 주목하는 이유다. 특히 정 교수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 집행위원장으로서 진보 학계의 한 축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 "근대화의 두 축은 산업화와 민주화"=정 교수는 '식민지적 근대'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식민지 시대에 착취만 있었다고 보는 '수탈론'의 시각을 탈피한 개념이다. 일제시대에 자본주의화(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시각을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식민지 시대도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며 "식민지자본주의에서 성장과 개발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 근대사를 일제의 억압과 그에 맞선 저항이라는 이분법으로 봤던 기존의 통설과는 많이 다르다.

정 교수는 "식민지에서 근대화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따지는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의 효율적 수탈에 조응하기 위해 이식된 근대에 따라 식민지 사회가 근대화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민지적 근대의 내용과 본질 그리고 전망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의 '식민지적 근대'와 기존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구분했다. 그는 무엇보다 '근대=자본주의(산업화)=선(善)'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그가 볼 때 식민지 시대나 해방 이후나 모든 근대화의 두 축은 산업화와 민주화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적 근대는 국가.민족.주체가 빠진 산업화였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근대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민주화를 소극적 또는 적대적으로 보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근대화는 무조건 선이라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그는 이어 "21세기 역사학은 평화와 공존에 기여하는 지평을 넓혀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병행적 시각에서 보는 것이 한 예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같은 병행적 시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분단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정 교수는 "평화적 남북관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평을 넓혀주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 식민지 근대화론의 공세 계속=이와 별도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거점 역할을 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소장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3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목련관에서 '조선왕조의 재정과 시장'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일본의 침탈이 없었다면 조선이 자발적으로 근대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보는 '식민지 수탈론'(이 경우엔 식민지 수탈론을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대해 또 한 번의 공격을 펼친 자리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는 조선이 스스로 자본주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시각에 대해 회의적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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