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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사죄만으론 안된다"|여성 단체들, 일 총리 방한 앞서 활발한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오는 16∼18일 예정된 일본 미야자와 (궁택희일)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인 여자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일 정부의 공식 태도에 여성계의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모집을 지시·감독했다는 자료가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처음 발견됨으로써 일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됐고 이번 방한에서 공식 사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계는 공개 사죄 뿐 아니라 철저한 진상조사·배상 및 역사 교과서에 올바른 기록 등이 이뤄져야한다며 대규모 항의 시위와 강연회 등을 준비중이다.
지난 90년11월 36개 여성 단체로 구성·발족된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대표 박순금·이효재·윤정옥)는 방한 하루전인 1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종로 탑골 공원에서 대한YWCA·여대생 대표자 협의회 등과 함께 대중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 여성 정치 연맹 (총재 김정례)은 16일 오후 2시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인 정신대에 대한 사죄 및 배상 촉구 결의 대회」를 열고 일 정부에 항의 성명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정신대 문제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후 정부 주도로 약 8만명에서 20만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젊은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 군인들의 성의 분출구로 유린한 가장 악랄한 탄압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해왔고, 정부고위 관리들도 『민간 업자가 데려왔다』며 「정부 불관여」 입장을 취해왔다.
반면 일본내 의식 있는 여성 단체·지식인 가운데 「종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회」 등 한국 여성 정신대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늘고 인적·물적 증거가 차츰 확보돼 『조선인 종군 위안부』 (영목유자 저) 등의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정신대가 일본군의 관리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미군 작성 공문서와 일본 방위청 공문서가 발견되어 일본 정부가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종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정신대 협의회가 91년9월에 개설한 정신대 신고 전화와 각 단체 등을 통해 나타난 종군 위안부 및 근로 정신대는 김학순 할머니 (67) 등 이제까지 10여명에 이른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12월6일 징용자였던 2명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각각 일본 정부를 상대로 2천만엔 (한화 1억1천9백만원)의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해 둔 상태다.
현재 일본내에는 「기독교 교풍회」 「아시아 성 관광을 반대하는 남성들의 모임」 「종군 위안부 우리 여성 네트워크」 등 많은 단체들이 여자 정신대에 대한 연구와 진상 규명 등에 힘쓰고 있다.
「조선 식민지 지배의 사죄와 청산을! 국민 서명 운동」 등 11개 단체는 최근 총리관저를 방문, 철저한 사죄와 진상 조사·배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신대 협의회 윤정옥 대표는 『정신대 문제는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 가부장제가 식민지 국가인 우리 나라를 성적으로 침탈한 문제』라며 이를 개인이나 가문의 수치로 생각할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고 역사의 증언자들이 나서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사죄·배상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대 문제에 관해 우리 정부는 최근 이제까지의 미온적인 태도를 약간 변경, 91년12월 외무부 아주 국장이 주한일 대사관 공사에게 정신대 문제에 대한 조사를 정식으로 요청한바 있어 이번 일 총리의 방한 때 보여줄 우리 정부의 태도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신대 협의회는 오는 2월 불교·기독교·천도교 등 초교파적으로 여성계가 참가하는 정신대 희생자 추모제를 계획중이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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