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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투명경영 약발…의약부문 매년 두자릿수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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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에로화이바로 유명한 현대약품㈜은 꾸준한 회사다. 1978년 상장한 이후 29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이익을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했다. 최근 3년간 매출액 1000억원대에 순익도 50억~60억원대를 꾸준히 내고 있다. 제품도 꾸준하다. 수십년간 대표상품인 물파스는 '국민의약품'으로 자리 잡았고, 전문의약품인 테놀민(고혈압 치료제).레보투스(호흡기 치료제).마이녹실(발모제) 등도 꾸준하다.

중견기업에서 자주 눈에 띄는 친인척의 경영 참여를 이 회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한구(59.사진) 회장은 "65년 창업 이후 친인척이 입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2세 오너 경영자지만 전문경영인에 더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회장실에 비서도 없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무역회사에서 일하다 74년 현대약품 대리로 입사해 33년간 영업부를 비롯, 각 부서를 거의 다 돌았다.

40여 년간 꾸준히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회사. 이런 회사에는 어떤 위기가 있었을까. 이 회장은 지난해 작고한 부친 이규석 창업주가 중풍으로 쓰러졌던 92년을 '위기의 시기'로 꼽았다. 모든 것을 오너가 결정하는 보통 중견.중소기업의 조직문화에서 오너의 빈 자리는 너무 컸다. 이 회장은 "큰 나무 그늘 아래 있다가 갑자기 땡볕에 서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회사 안팎에서 공인한 2세 경영자였지만 최고경영자로서는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때였다. 그는 불안해하는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채널을 넓혔다. 무엇보다 경영 실적으로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그때 나온 제품이 식이섬유 함유음료인 미에로화이바였다. 이게 대박을 터뜨리면서 회사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이 회장은 보수적인 제약회사를 탄탄한 정보기술(IT) 기반을 가진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미 15년 전 전자결재시스템을 도입했다. 임직원들의 전산 교육도 강화했다. PC 자격증이 없으면 승진도 못하게 하는 초강경 정책을 밀어붙였다. 전산화는 투명경영으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97년 현금 출납업무를 없앴다. 그 대신 회사 4층의 재경팀에 은행 현금인출기(CD기)를 설치했다. 현금(시재금)을 회사 금고에 보관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경비는 그냥 CD기에서 뽑아 쓴다. 이 회장은 "나도 경비를 CD기에서 찾아서 쓴다"고 했다. 전산화 덕분에 10여 년 전부터 영업사원들의 재택근무도 가능해졌다.

현대약품은 2004년 서울 구로에 연구소를 세웠다. 서울이 연구개발(R&D) 인재를 유치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서울에 연구소가 있는 회사는 제약업계에서 우리뿐"이라고 했다. 직원 교육시스템도 꼼꼼하게 만들었다. 온라인으로 필요한 교육을 하고 진도를 맞추지 못하면 문자메시지(SMS)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공부를 안 하면 도저히 못 버티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 회장은 "인재 육성을 위해 '병적인 집념'을 갖고 있다"며 "우수한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2월 주총에서 회사명을 현대약품공업㈜에서 현대약품㈜으로 변경하고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기존 국내 전문의약품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세계 시장과 바이오 신약시장을 적극 공략해 글로벌 제약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까지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적인 목표도 정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의약품 부문에 비해 최근 식품 부문은 실적이 그리 좋지 않다. 식품 부문 주력 제품인 미에로화이바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다슬림9 카테킨 녹차를 기능성 녹차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요란한 홍보 없이도 실속있게 성장해온 현대약품은 최근 수퍼개미 박성득씨의 주식 투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개인투자자 박씨의 지분은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9.8%다. 이 회장 지분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25.7%로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인수합병(M&A)을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꾸준히 배당을 하면서 투명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과의 불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이 회사 2대 주주는 지분 11.5%를 보유한 신영투신이다. 신영투신은 소문나지 않은 중견 알짜기업을 골라 오랫동안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로 이름이 높다. 신영투신 허남권 주식운용본부장은 "미에로화이바와 함께 전문 의약품 분야에서 강한 회사여서 경기와 크게 상관없이 실적을 낼 수 있고, 발모제 마이녹실도 요즘의 웰빙 추세와 잘 맞을 것 같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글=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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