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25) 일자리가 전부야, 이 멍청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기업 비위 맞추는 이유>

"어차피 정부가 모든 사회적 약자를 다 구제할 수는 없겠지요. 제한된 범위, 다시 말해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그런 사람들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요."이강의 질문에 미셸은 이렇게 대답했다.

"재정이 이미 적자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여유가 없어졌으니 다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요?"이 지적에 미셸은 머뭇머뭇했다. 그 사이 이강이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은 모든 나라 정부들이 자국 기업들의 투자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외국기업이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지요. 기업 활동에 불편이 없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낡은 규제와 제도도 뜯어고치고 있고요. 그건 다 하나의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 봐요. 바로 일자리 창출이지요. 그것이 가장 광범위하고 본질적인 대책이니까요."

"일자리 창출이 다야?"소왕이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요즘 대부분의 경제정책은 결국 일자리가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로 귀결되지."

"한 나라의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일자리가 최종의 가치라는 거야?"소왕의 질문이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지. 종교나 사회봉사나 이념으로 보면 다른 대답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아도 일자리만 많이 만들면 된다는 거야?"

"자본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서는 이미 그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이라는 게 있지. 다시 말해 인간의 얼굴을 포기할 정도의 기업활동은 존재하기 힘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경영자와 근로자들은 본질적으로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논쟁하고 대립하는 일은 언제나 있겠지만 말이야."

"그런 전제조건을 인정하면 경제에서 최종의 답은 일자리라 이거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일자리는 경제활동의 세 주체인 기업과 개인, 정부가 만들지. 정부가 예컨대 경찰이나 교사를 더 뽑으면 그만큼 고용창출에 기여하지. 또 어떤 사람이 식당을 개업해 종업원을 채용할 수도 있지. 그러나 역시 큰 몫은 기업이 하는 거지. 정부가 개인이 좁쌀이라면 기업은 큰 호박이라고 할 수 있지. 요즘 모든 나라는 일자리 창출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어. 정부가 기업가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애쓰는 것도 바로 이들의 의지에 일자리가 달려있기 때문이야. 기업은 한 나라의 활력과 생기를 좌우하지. 기업이 잘 돌아가야 직원을 많이 채용하고 그 결과 실업자가 줄어들게 되지. 기업이 채용을 줄이면 상대적으로 덜 배우고 기술력이 낮은 사람들이 일할 기회를 잃게 돼. 그래서 사회적 계층 격차가 확대되고. 정부가 재정으로 이들을 다 먹여살리면 되겠지만 요즘 세상에서 그 정도로 풍족한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어. 그래서 중간 계층 이하 사람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거라고."

그러면서 이강은 얼마 전 한국 국세청이 일자리 확대에 기여한다며 코미디 같은 대책을 내놓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대책인데, 코미디 같다는 거야?"

"직원이 20명 이하인 중소기업은 종업원을 1명만 늘려도 최장 3년 동안은 세무조사를 면제시켜 주겠다고 한 거야."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애쓰는데, 뭐가 문제야?"

"잘 생각해 보라고. 탈세를 해도 좋으니 고용만 늘리라는 얘기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둘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이걸 연결시킨다는 건 아무래도 억지 같아. 세무조사는 탈세 혐의가 있는 기업을 상대로 펴는 행정권이지. 물론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것이고. 이런 중요한 권한을 일자리 한,두 개와 맞바꾸겠다는 건 정부의 월권이지."

"고용 창출이 그만큼 급했다는 얘기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앙뜨완느가 한마디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부가 그렇게 앞뒤 안 맞는 일을 하면 안 되지요. 기업은 자체 판단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기도 하고 해고하기도 하는데, 국세청 눈치를 보느라 자를 직원을 못 자른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지요. 딱 해외토픽감 아닌가요?"

"그래도 채용한 뒤 2년간 써먹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고해도 좋다는 법을 만드는 프랑스 정부보다는 몇 배는 나은 것 같네요. 기업에서는 더 유능한 직원을 뽑을 수 있어 좋을지 모르지만 해고당하는 본인이나 그걸 지켜보는 직원들은 얼마나 불안한 나날이겠어요?"미셸은 미국식 자본주의는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어떤 사회제도와 정책도 인간적인 삶을 위한 것인데 그 근본이 파괴돼서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였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현실감이 결여됐다는 느낌을 이강은 지울 수 없었다.

<재취업을 막은 실업수당>

두 사람은 두 여대생과 헤어진 뒤 카페에 들어갔다. 멀리서 시위대들의 구호는 계속 들려왔다. 이강은 유럽의 사회복지제도 가운데 실업수당이라는 핵심 요소가 있다고 했다.

"요즘은 웬만큼 산다는 나라엔 이 제도가 다 있는데, 그 뿌리는 서유럽이야. 프랑스와 독일이 대표적이지."

"그게 뭔데?"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정부가 수당을 주는 거지. 실업자 구제 수단 중 하나지. 정부가 실업자나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통틀어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라고 하지. 그런 제도로 사회적으로 실패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지. 유럽의 경우 이 안전망의 그물이 너무 좀좀하게 잘 짜여졌던 게 문제가 됐어. 프랑스나 독일 근로자들은 처음에 해고당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직장을 잃어도 적지 않은 실업수당이 나오니 놀고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퍼졌지.실업수당을 많이 줬더니 실업자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거야.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국가의 생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지. 실업수당이 계속 나가면서 정부의 금고는 더욱 줄어들고."

"그러면 실업수당을 줄여야 되는 거 아냐?"

"그게 정답이지. 그러나 기존의 혜택을 줄이자는데 동의하는 근로자와 노동조합은 없었어. 어떤 결말에 이를지 뻔히 알면서도 계속 파국을 향해 갔던 거야. 결국 한참 뒤늦게 제도를 손질했지만 지금도 유럽엔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 그 중에서도 프랑스가 심하지."

"제도 자체는 좋은데 결국 돈이 문젠가?"

"그런 셈이지. 1980년대 들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프랑스 정부는 이런 복지정책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어. 국가 부채가 국민 한 사람당 1만7200유로(약 2000만 원)를 넘어섰고 91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2%에 겨우 턱걸이할 정도로 저성장이 굳어졌지. 그런데도 지금도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의 25개 회원국 중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사회보장비용을 지출하고 있어."

심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