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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참새 아빠' 까지 나오는 마당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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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반면 독수리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은 독수리 아빠라고 한다.

기러기 아빠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펭귄 아빠다. 날지 못하는 펭귄처럼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펭귄 아빠보다 능력이 떨어지면 참새 아빠다. 외국으로 보낼 돈은 없고 그렇다고 서울 강남 지역으로 이사 갈 형편도 안 돼 강남의 소형 오피스텔을 세 얻어 가족만 유학(?) 보낸 사람들이다. 멀리 못 돌아다니는 참새를 빗댄 얘기다.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진실의 일단을 담고 있는 얘기다. 기러기 아빠도 '급(級)'이 생길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이 같은 현상이 만연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외국에 나가는 돈만도 연간 4조원이 넘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유학 및 연수비용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44억6000만 달러였다. 게다가 2004년 25억 달러, 2005년 34억 달러 등 매년 1조원씩 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경제학적으로 보면 답은 간단하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불일치) 때문이다. 수요자가 원하는 걸 공급자들이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국내에서는 질 좋은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택한 수단이 기러기 아빠다.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 지는 오래됐다. 고교 평준화를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 새 사회문제로 등장한 건 소득이 늘어나서다. 연간 3000만~4000만원의 자녀 유학 비용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사람이 더 많아질 것도 자명하다.

사정이 이렇다면 해법도 간단하다. 돈이 얼마가 들든 질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교육 수요자들의 욕구를 국내에서 충족시켜 주면 된다. 이는 교육을 자율화할 때만 가능하다. 정부가 일일이 물건 값을 정해주던 1970년대 당시 시멘트 한 부대의 소비자 가격은 900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 고시가격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은 이 가격으로 시멘트를 살 수 없었다. 실제 가격은 1900원이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암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멘트와 교육의 차이점은 시멘트는 암시장으로 가지만 기러기 아빠들은 가족을 해외로 보낸다는 것뿐이다.

본고사와 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를 금지한 3불(不)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 간 오랜 갈등도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지'가 아니다. 질 좋은 교육을 위한 '장려'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개방이 급선무다. 외국의 명문 대학들이 국내에 물밀듯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나 연세.고려대가 3류 대학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기부금 입학도 당연히 허용해야 한다. 위화감 조성 운운할 일이 아니다. 자녀를 유학 보낸 집과 그렇지 않은 집 간의 위화감은 이미 상당한 지경이다.

교육 서비스 시장도 다른 제품 시장처럼 개방과 자율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에는 후유증이 있겠지만 이는 금세 사라진다는 걸 저간의 '한강의 기적'이 증명한다.

김영욱 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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