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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24) 사회주의가 인간적이라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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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도 쉽게, 채용도 쉽게

"새 고용법이 뭔데 저렇게 심하게 데모를 해?"

놀란 소왕이 입을 열었다. 신문 기사를 다시 찬찬히 읽어봤다. 프랑스 정부가 만든 새 고용법은 정식 명칭은 최초고용계약제(CPE)였다. 기업이 26세 미만의 젊은이를 채용한 뒤 2년 안에는 특별한 사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젊은이들의 고용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이런 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거 참, 이상하네. 정부는 젊은이들의 취직이 잘 되도록 법을 만들었다 하고 대학생들이나 근로자들은 그게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으니 말이야."

"글쎄 말이야." 대학생들은 처음에는 취직이 잘 되겠지만 2년이 되기 전에 회사 측이 해고하면 대응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일단 입사하면 오래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그런 보장이 없는 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소왕은 학생들 의견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부가 젊은이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이런 법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또 뭐냐고 물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렇게 돼 있어. 일단 채용한 뒤에는 쉽게 해고를 못 하게 하면 기업들이 신규 채용 자체를 꺼린다는 얘기야. 그래서 한 2년쯤 써보고 좋다고 판단되면 그때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거지."

"그 설명을 들으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소왕은 헷갈린다는 표정이었다. 이강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 이슈는 노동시장 경직성과 관련된 것이지. 딱딱한 노동시장을 어떻게 유연하게 바꾸느냐는 문제지.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것은 쉬운 말로 직원을 마음대로 자르지 못하는 상황을 뜻하지. 해고가 쉽다는 건 채용도 쉽다는 뜻을 내포하지.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해고한 다음 그 자리에 다른 누굴 충원해야 하니까."

"쉽게 사람을 자를 수 있으면 기업주만 유리한 것 아닌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면 새 직장을 얻었다고 기뻐할 수도 없을 거잖아."

"맞는 말씀. 그런데 이런 측면도 있어. 알다시피 요즘은 치열한 경쟁시대야. 경쟁사에 밀리면 그 기업은 끝장이지. 그렇게 되면 모든 직원들이 실업자가 될 수 있지. 따라서 망하기 전에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키워야 하겠지. 그런데 기존의 인력으론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생산성이 낮은 직원부터 해고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인건비를 줄이거나 더 유능한 직원을 채용해 경쟁력을 보강하게 되지."

"그러니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야?"

"몇 명을 줄이지 않으면 회사가 망해 모든 직원이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라고. 이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요즘 기업들은 상시'구조조정(restructuring)'을 하고 있지. 구조조정이란 말이 좀 어렵지만 수익을 못 내는 사업을 접고 거기에 따라 해고를 포함해 인력 배치를 달리하는 작업을 말하는 거야."

소왕은 그래도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해고당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플 것 같다고 했다. 이강도 동조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지만 기업은 이익을 내는 걸 목표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익을 못 낼 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왕에게 20 대 80의 법칙이라는 걸 아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는데."

"대체로 한 조직을 들여다보면 20%는 열심히 일하지만 나머지 80%는 월급 값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겨났대. 회사 측은 그 중 특별히 실적이 나쁜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조직에 긴장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올리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이강은 덧붙였다. "정말 재밌는 사례가 있대. 그룹 산하의 여러 자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만 추려서 새 조직을 만들었대. 그런데 거기서도 20 대 80의 법칙이 생겨나더라는 거야."

"그러면 그 법칙은 결국 상대적인 거 아냐?"

"양쪽 측면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소왕이 지적한 대로 어느 조직에서든 우열이 나뉜다는 것이지. 동시에 어느 조직에서든 톱에 속하는 사람들은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열의를 못 느낀다고 볼 수도 있지."

"후자라면 20대80의 법칙은 조직원이 아니라 리더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까?" 리더십에 따라 20이 30이 되고, 나아가 80도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20 대 80의 법칙을 처음 접한 그였지만 색다르게 제시하는 접근법에 이강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어떤 얼굴일까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학생 둘이 끼어들었다.

"관광객인가요?"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옆에 있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데모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이강은 소르본 대학생들이 왜 저렇게 격렬한 시위를 하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답했다. 두 여대생은 기꺼이 자신들이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그날 파리 중심부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소르본대 주변에선 스크럼을 짠 학생들과 경찰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여기저기 자동차가 불에 탔으며 길바닥은 깨진 유리로 뒤덮였다. 문화대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와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부하는 파리, 그리고 지성의 산실이라는 소르본대의 이미지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번 시위에서는'부르주아를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라'는 피켓까지 등장했어요." 미셸이라는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부르주아라는 용어를 아직도 쓰는 걸 보면 프랑스는 사회주의 성향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이강이 한마디 하자 미셸은 프랑스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받았다. 그녀는 이어 미국식 자본주의는 인정머리가 없는 반면 프랑스 사회는 인간적인 모습을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적인 사회, 그게 좋은 거 아닌가요?"소왕이 끼어들었다.

"그렇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의 얼굴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근로자를 쉽게 내쫓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죠." 미셸의 친구인 앙뜨완느가 맞장구를 쳤다.

그 말에 이강이 나섰다. "국가와 사회가 못 살고 덜 배운 사람을 챙기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종국엔 돈 문제로 귀결되더군요. 나라에 돈이 많아야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지요. 그럴 돈이 없는데도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욕구가 분출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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