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8. 내 자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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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는 '영원한 디자이너'로 불리기를 바란다. 'HEREN' 지난해 11월호에 실렸던 이 사진은 사진작가 채우룡씨가 찍었다.

내년이면 나는 만 80세가 된다. 나는 20세에 미국으로, 29세에 프랑스로 가 패션 공부를 하고 약 60년 동안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어왔다. 내 나이는 패션 디자이너 경력과 더불어 쌓인 자랑스러운 숫자다.

나는 프랑스의 고급패션과 미국의 기성복을 함께 연구해 입기 편하고 절제된 우아함 속에 살짝 드러나는 섹시한 감각의 옷을 만들었다. 입는 이나 보는 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해 왔다. 글로 치면 산문(散文)이 아니라 시와 같은 운문(韻文)처럼 심플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나의 패션 철학이다.

그리고 나는 봉제.염색.프린트공장 등을 함께 운영하면서 옷 만드는 과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앴다. 이런 효율적인 생산 조건을 갖춘 덕분에 우리 제품이 국제시장에서 일류 제품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

장인(匠人)정신으로 한 직업에 평생을 바쳐 편안함과 섹시함이 조화를 이룬 옷으로 여성에게 즐거움과 꿈.환상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지구촌은 고속 경제 성장 속에 탈공업화.정보화시대로 들어섰다. 패션계도 과거의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사람들이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패션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패션 경향은 캐주얼복 쪽으로 기울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디자이너로서 최고의 행운아였다. 80년대 디자이너 중심의 패션 전성기에 미국 뉴욕 7번가에서 내 능력을 십분 발휘해 마음껏 디자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각한다. 당시 나는 50대의 원숙한 디자이너로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지금 나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살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패션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일은 없다. 글로벌 대자본이 패션계를 통합한 듯한 요즘 세계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자신을 '대기업 코드'에 맞추느라 애쓰고 있다. 나는 이런 추세도 언젠가 끝나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라 노에서 한결같이 일해준 핵심 멤버들의 모임이 있다. 그들은 매년 스승의 날에 꽃을 보내주고 식사 초대를 한다. 그들은 '노라 노 모임'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다들 입을 모아 노라 노에서 일하던 시절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내가 팔십 평생에서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자랑거리가 한 가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80년대 실크 의류제품 수출에 전념할 때 나와 함께 숱한 밤을 새며 일하던 동지들이다.

오늘날까지 내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객.직원.친지.후배들 그리고 수개월 동안 변변치 않은 이야기를 애독해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노라·노 (디자이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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