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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직무유기 유죄인정/대법원 무죄원심 파기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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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민 오해 후련히 씻어/축소조작 「그릇된 의리」에 쐐기
대법원이 27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 등 경찰고위간부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은 경찰이 박군사건 처리를 잘못했다는 점을 사법부가 최종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을 제한하는 기속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재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년4개월여에 걸친 상고심 심리를 거쳐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은 사실을 오인한 부당한 판결』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특히 지금까지 사법부는 직무유기죄 적용에 무척 엄격했던 것이 관례였으나 강민창 전치안본부장의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서는 판결문을 통해 『경찰의 총수로 고문치사 범죄를 저지른 소속경관들을 수사하지 않은채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조작 하려한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명쾌하게 밝혀 강피고인의 「범행 고의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로써 5공시절의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6·10항쟁」과 「6·29 선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민주화 과정에 기폭제가 됐던 박군 고문치사 사건의 법적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밝혀졌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됐으며 수사기관의 인권 경시풍조에 한번더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법원은 또 이번 판결에서 87년 1월 박군 사망직후 『경관 2명이 조사중 책상을 「쾅」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조작발표토록 한 박호원 당시 치안본부 5차장 등 당시의 대공수사단 소속간부 3명에게 범인 도피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혀 그릇된 「의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결국 진상을 알고 부하경관 5명중 2명을 뽑아 『속죄양이 되라』고 지시를 내린 경찰간부들은 흉악범을 숨겨 달아나게 한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뜻이다.
이들 경찰간부 4명이 1심에서 모두 유죄판결로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던 점에 비추어 재항소심에서 이들에게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희박한편.
대법원은 지난해 8월 2심에서의 전원 무죄판결에 불복,검찰이 상고한 이 사건의 신중한 심리를 위해 ▲직무유기죄의 구성요건 ▲범인 도피죄의 성립여부 ▲공모·공동정범 성립관계 등 법률적인 검토를 대법원 공동재판 연구관들에게 각각 배당,엄격한 법률검토를 하면서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특히 이 사건의 항소심 변호인으로 무죄판결을 받아냈던 당시 변협회장 박승서 변호사가 일부 변호사들에 의해 사임요구 서명파동으로 이어졌던 파문을 고려,파기 환송판결을 내리는데 신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고심 사건의 90%쯤이 기각되는 전례에 비춰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사건관련 피고인들은 물론 청와대·검찰관계자들조차 판결결과에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결국 박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은 사건발생 5년여만에 다시 사법부의 단죄를 받게됨으로써 항소심 무죄판결로 사건재발을 우려해온 일부의 오해를 씻어낼 수 있게 됐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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