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한국여인상 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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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보리밭의 화가」 이숙자씨(49·서울교대교수) 가「여자나이 50」을 앞두고 자신의 학업을 되돌아보는 자전적 에세이집 『이브의 보리밭』 을 퍼냈다.
화가로서의 고뇌, 전력투구해 온 의지, 교수·한 남자의 아내·어머니·며느리 등 1인 5역의 역할이 빚는 힘겨움과 뿌듯함, 자신의 예술론 등을 1천 여 장의 원고지에 담았고 그의 일관된 주제인 보리밭과 여인, 소(우), 꽃, 여인의 누드 크로키 등 20여 점의 그림도 원색과 흑백으로 곁들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보리밭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해 온 그답게 『인생을 깊이 천착하는 사고와 글 솜씨에도 팽팽한 긴장감과 섬세함이 깃들여 있다』 는 것이 이 책을 접한 주위 사람들의 평.
그의 그림과 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보리밭」과 「이브」에 대해 저자자신은 『보리밭은 밟아도 되일어나는 한국민중의 끈기와 정서를, 「벌거벗은 이브」는 한국 아성을 옥죄는 각종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도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표현하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90년 들어 그림 속에 여인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것을 그는 성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한국적인 여인상이며 이상향인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예술론을 강변한다.
비교적 뒤늦은 나이에 홍익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익힌 그는 국전에 14회 입선, 2회 특선을 거쳐 화업 17년만에 국전 초대작가가 됐다.
80년 보리밭을 그려 중앙미술대선과 국전대상을 수상한 이후 「보리밭의 작가」라는 이름을 굳혀온 그는 90년 들어 보리밭에 「벌거벗은 이브」를 함께 등장시키면서 그가 늘 소망했던 한국적인 정서와 인습의 굴레에 도전하는 여인을 같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즐거운 변화」를 이루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동기를 명예나 돈 등 구체적인 목표에 둔다면 절대 큰 그림이 나올 수 없다』는 그는 앞으로도 삶과 부닥치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림과 글을 통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표현하겠다고 한다.
『보리밭』『군우도』『환상의 이브』 등 1백호이상의 대작을 위주로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해온」그는 예술인들이 강하게 느끼는 고독함도 그림을 그려서만 풀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그림에 매달려왔다. <고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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