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지만 패기는 부족|올신춘 중앙 문예응모작 경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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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춘문예 당선자 연령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70년대까지 국문과 위주의 문학지망 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뤘던 당선자층은 80년대들어 문예창작과나 예술전문대학 출신이 차지하였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들면서 문예지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의 문학창작교실 출신들이 신춘문예를 석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에 진출하고서도 스러지지 않는 학창시절 문학의 꿈을 뒤늦게 이룬 장·중년층이어서 「신춘문예」가 이제 「만추문예」가 됐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자가 고령화되면서 당선작들은 미적 완성도가 한결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자잘한 주제이면서도 시에서는 상상력이 섬세하게 일렁이고 있고 소설에서는 구조가 빈틈없이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섬세하고 완벽함에도 불구, 뭔가 미흡함을 느낀다는게 최근 몇년간 신춘문예심사를 맡았던 문인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문체는 당선작들이 한결같이 가라앉아있는데 있다. 바람직한 형태실험이나 들끓어 오르는 주제의식은 부족하고 잘 빚어진 항아리 같이 빈틈없는 기성품으로만 빛나고 있는 것이 요즘 신춘문예 당선작들이어서「신춘」의 풋풋함을 찾아 볼수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다.
10일 마감, 24일 각부문예·본심을 마친 「92년 신춘중앙문예」응모작은 시 8천여, 시조 8백여, 단편소설 2백1, 희곡 l2, 평론 30편으로 전년과 비슷했다. 부문별로는 전년보다 희곡이 반감하고 평론이 10여편 는 것이 특징.
응모시들은 시대적 주제는 찾기 힘들고 대신 한층 미학적 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
특히 80년대 중·후반에 주류를 이루다 90년대들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던 민중·운동권시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또 해체시등 급격한 형태실험시도 눈에 거의 안띄어 시가 급격히 서정위주의 문학성으로 복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실에서도 시대를 이끄는 뚜렷한 주체의식이 부족하다. 가끔 격변하는 시대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한 작품들도 눈에 띄긴 했으나 문장·구성력이 부족해 감동으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응모자 홀로 항변하는 덜익음만 보였다. 또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받은 실험적 작품도 더러 보였는데 다들 그 실험이 삶의 의미에 보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위한 실험으로 소모되고 있어 선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시조는 예년에 비해 한층 현대화됐다는 것이 선군들의 평. 박제화된 은유나 상징에 의해 매끈하게 연상되는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아니라 차단에 의해 일어나는 이미지의 긴장등 현대시 기법을 과감히 차용, 기성시조의 틀을 넓히는 작품들이 많아 현대시조의 앞날을 밝게했다.
희곡은 응모작 수가 반감돼 가뜩이나 부족한 창작극무대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했다. 반면 평론은 응모작이 전년에 비해 l.5배 가량 늘어나고 대부분의 작품이 한결같은 수준을 유지, 90년대가 비평의 시대로 진입하고있음을 실감케 했다. 응모자들 대부분은 대학원 석·박사과정의 문학전공자들이고, 이들 대부분이 평론대상으로 황지우·이성목·하일지등 최근 문제작들을 택하고 있는것이 특징. 때문에 문학연구, 혹은 강단비평과 현장비평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변별해야할지가 평단의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그러나 올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문인들은 한결같이 당선자들의 고령화 때문에 작품에 패기가 없음을 우려했다.
올 한 신춘문예의 심사를 맡았던 시인 오세영씨(서울대교수)는 『사회가 안정되고 민중문학이 침체되며 문학이 제도권문학으로 회귀함에 따라 당선자의 고령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며 『그러나 신춘문예의 풋풋한 패기를 찾기 위해 1월1일 지면에 발표해야하기 때문에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골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주제나 형식에 대한 패기있는 도전도 높이 사야 할것』이라고 밝혔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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