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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조직가동비가 “주범”/말뿐인 법정한도액(돈선거 안된다: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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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 인건비만 5억∼20억원씩/야 공천따기 여보다 많은 자금 들어
지난 주말 경북 K군의 한 조그만 자연부락 농협회의장에선 아주머니 30여명이 「주부대학」특강을 들었다.
특강이 끝나자 그들에겐 그 지역 민자당 의원인 주부대학 이사장이름의 수건등 선물이 전달됐지만 일부 아주머니들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부녀회장은 기미를 알아차리고 『지금은 조직점검중이므로 선거때를 기다려 보라』고 서둘러 해명하면서 참석자의 명단을 흔들어 보였다.
사정을 잘아는 이 동네 토박이는 『선거 2∼3일전 돈을 뿌릴 집을 알아보는 모임』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도의원선거때 경험한 똑같은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총선이 수개월 남은 시점에서 아직 매표같은 악질사례는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당원연수·단합대회·의정보고회 등 합법적 정당활동을 핑계로 어느 선거구나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의원들은 한결같이 『선거자금의 법정한도액을 지킨다는 후보가 있다면 모두 거짓』이라고 단언했다.
민자당의 초선인 A의원은 심지어 『「돈 안쓰는 선거」를 언론에서 얘기하는데 한마디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14대선거에서 운동에 동원되는 당원 인건비만 20억원이상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가 제시한 이번 총선의 법정한도예상액은 선거구당 평균 1억3천만원선. 아무리 큰 선거구라도 2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야 가릴 것 없이 취재대상자중 그 선이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한명도 없어 이미 선거자금 규모면에선 『불법』을 각오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선거자금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조직가동비.
특히 「조직선거」를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는 여당의 경우 후보마다 조직가동비로 적게는 5억원대에서 극단의 경우 20억원선까지 책정하고 있어 14대에 뿌려질 총선거비용의 절반쯤을 차지,「돈선거」의 주범으로 드러나고 있다.
선거법은 보통 3백명내외의 등록된 선거운동원에게만 실비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으나 민자당 의원들은 평균 1천5백∼2천5백명의 당원에 대한 인건비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여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경기지역 A의원의 경우,지구당 협의회장(동책) 10명,지도장(투표구책) 50여명,관리장(통책) 5백여명,활동장(반책) 1천5백명 이상 등 2천5백명선의 당직자들을 상시 운동원으로 가동한다는 계획.
여당의원들은 『요즘 건설노동자의 일당이 5만원이므로 이 정도를 풀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가 없다』고 했다.
선관위측은 실비보상액으로 점심식사비와 대중교통비등을 포함한 명목으로 1만원 이하선을 고시할 방침이나 의원들은 애초 이를 무시하겠다는 태도다.
강원도 농촌출신 C의원의 경우 ▲4백70개리에 각각 책임자 1명,여성회장 1명씩 두고 리당 각각 50만원씩(전체 4억7천만원) ▲면단위로 올라가 면책(3백만원),지역장(2백만원씩)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면 전체 15개면(지역장은 50면)에 1억4천5백만원이 나간다.
또 이책밑에 자연부락별 현장선거요원 1천5백명에게 20만원씩 3억원을 주면 기본 인건비만 9억1천만원 수준.
여기에 연설회때 청년동원 비용(5백명×합동유세 3회×3만원=4천5백만원)이 이번엔 정당연설회를 한번씩 더 할 수 있어 그만큼 늘어나게 됐다.
돈들어갈 구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위 친여단체라는 새마을협의회,자유총연맹,바르게살기협의회,방범협의회,청소년선도회,재향군인회 등을 챙겨야 한다.
야당의원들중 적지않은 의원들이 각 단체별로 1백만원 정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녹색어머니회·조기축구회·등산회·낚시회 등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단체에 별도 「인사」를 해야 하며 그쪽에서도 「찬조」를 요구한다.
때문에 경남지역 D의원은 후보 활동비로 하루 7백만원씩 전체 1억2천만원을 잡아 여기서 품위관리비용을 내놓는다.
선거중 평당원에게 뭔가 성의표시를 하는 것도 골치다.
이번엔 금품을 받으면 신고한 유권자는 처벌받지 않도록 법이 고쳐져 자칫 가짜 당원에게 당할 소지가 있고,온천관광같은 씨끌벅적한 것은 사진찍히기 십상이고 선물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어떻게든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
D의원은 『지난 광역선거때 워낙 물을 흐려놓아 모른체 하다간 입당원서받은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오히려 걱정이다.
지난 선거때부터 여당은 중앙당이 선거경비를 조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체자금 조달이 가능한 사람들을 주로 공천했다. 이들 재력가들은 선거를 아예 돈 쓰는 일,돈으로 표사는 절차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여당은 각종 행정기관을 통해 이를 비호해온 게 사실이다.
여당의 조직선거가 돈선거의 가장 큰 원인이고 행정력이 이를 방조·은폐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전통적으로 바람몰이 선거를 해온 야당의원들도 날이 갈수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선거에 물들기는 마찬가지.
서울과,「공천=당선」이라는 호남간에는 3억∼5억원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이 든다는 조직가동비는 여당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며 소수정예다. 대신 공천따내는 비용이 여당보다 월등하다는 소문으로 호남출신 Q의원에 따르면 공천헌금 5억원+선거운동비 3억원 등 8억원을 얘기한다.
돈선거의 폐단은 사회를 부패시키고 경제를 좀먹어 들어간다. 유권자들의 선거의식혁명과 함께 정부·여당의 자기반성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야당도 부패해가는 공천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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