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21) ‘어린 왕자’는 이렇게 탄생했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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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다>
3월 중순이 되자 봄 기운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강이 소왕을 만난 지도 네 달이 되었다. 어느 날 소왕은 이강에게 시간을 좀 길게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른 나라도 좀 여행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보면서‘살아 움직이는 지구촌 경제’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강에겐 마침 회사 눈치를 보느라 쓰지 못하고 있던 겨울 휴가 1주일이 남아 있었다. 그와의 여행이 아주 뜻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가 있었지만 이강은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이강은 그에게 어느 나라를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소왕은 프랑스를 꼽았다.

“왜 프랑스야?”
“글쎄, 그냥 마음이 끌려.”
“혹시 생텍쥐페리라는 작가 알아?”
이강은 그동안 오래 묵혀뒀던 질문을 꺼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강은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며 에어프랑스에 오르자마자 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생텍쥐페리 매니아를 만나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어. 4살 때 아버지를 잃고, 미술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 학식과 교양이 많았던 어머니의 교육과 관심 속에 자랐지. 어렸을 때부터 시를 좋아할 정도로 감성이 풍부했대. 창공과의 인연은 12살 때 처음 맺었지. 집 가까운 곳에 있던 비행장에 자주 놀러 갔는데 거기서 한 비행사가 그를 기특하게 보고 비행기를 태워줬던 거야. 16살이 되면서 스위스 프리부르의 기숙학교에서 들어가 발자크를 비롯한 전통 문학과 신과 종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지. 그는 대학으로 해군학교를 원했으나 미끄러졌어. 그래서 파리 예술대학에 청강생으로 건축학을 1년 반 정도 공부했지.”

“생텍쥐페리를 완전히 꿰고 계시는 분이군요. 저도 그 작가를 무척 좋아하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 끼어들었다.

“아, 그래요? 같이 여행하게 돼서 반갑습니다.”이강도 인사를 건넸다.
“제가 괜히 끼어들어 두 분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나 싶네요.”그때 소왕이 재빨리 나섰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냐 하면 제 친구가 생텍쥐페리에 관해서는 박사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막 설명을 시작하던 참이었지요. 그러니 이제부터 두 분이 생텍쥐페리에 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저는 열심히 듣겠습니다.”소왕은 그 여자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누구에게도 비호감으로 대하는 일이 없는 그이긴 했다.

“혹시 어린 왕자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세요?”

“당연히 모르죠. 어서 말씀해 주세요.”소왕은 귀를 쫑긋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35살 때 생텍쥐페리는‘파리 수아르’신문의 모스크바 특파원이 됐다고 해요. 그래서 모스크바행 열차에 올랐는데 그때 앞자리의 꼬마가 엄마 품에 안겨서 자고 있었대요. 그 애 얼굴이 너무 귀여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군요. 그 뒤에도 그는 틈틈이 작은 사내아이를 낙서하듯 그리곤 했답니다. 나중에 그는‘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은 뒤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하루는 뉴욕의 한 식당에 갔다 테이블보에 낙서를 했다네요. 바람에 날리는 금빛 스카프를 두른 사내아이였죠. 우연하게 이걸 본 출판사 편집장이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동화책을 써보라’고 제안했대요.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1943년 4월 이렇게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대단하시군요.” 이강이 이렇게 칭찬하자 그 여자는 자신은 몇몇 에피소드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때 다시 소왕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큰 인연인데 인사라도 나누지요. 제 이름은 웨슬리입니다. 웨슬리 파도치아입니다.”

“저는 오수아라고 합니다.”

“이강입니다.”

이강은 그때 소왕의 이름이 웨슬리 파도치아란 걸 처음 알았다. 소금별 왕자니, 줄여서 소왕이라고 부르는 동안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본명을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강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밝히지 않은 이름을 왜 그 여자에게 알려줬는지 궁금했다.

“저는 센트럴 데일리 경제부 기자인데 혹시 뭘 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좀 늦었지만 아직도 공부하는 중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다 그동안 못 썼던 박사학위 논문에 요즘 매달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학인가 보죠?”

“아닙니다. 런던에 있습니다. 이번에 파리를 거쳐 갈 일이 있어서요.”그녀는 그러면서 소왕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왕은 이강을 쳐다보았다.

“이 친구는 아주 먼 데서 왔는데 본업은 학생입니다. 경제가 뭔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죠.” 이강이 이렇게 소개하자 소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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