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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낙마' 재현될까 오히려 '손' 키워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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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무현 대통령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작심하고 비판해서다. 손 전 지사는 즉각 반격했다.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원칙의 정치'를 앞세운 노 대통령의 비판은 고건 전 총리를 중도 하차시킨 '실패한 인사' 발언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제2의 고건 효과'를 낳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논란의 복판에 선다는 우려까지 감수하며 손 전 지사를 비판하자 여권 인사들은 "정권 재창출과 관련해 자신만의 구상이 있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중요 고비마다 범여권에서 영입이 거론되는 후보들에게 견제구를 날려 왔다. 2월 6일 열린우리당 개헌특위 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 때 손 전 지사 영입론이 고개를 들자 "정치의 하책(下策)"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를 잘하는 건 아니다"고 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측이 긴장했다.

정치권은 손 전 지사 비판 발언 속에도 열린우리당 밖의 통합론이 탄력을 받는 흐름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 때와 달리 이번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당장 열린우리당 내 통합세력과 탈당그룹인 통합신당모임 측은 범여권 통합론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통령의 탈당이 정치에 거리를 두는 뜻으로 해석돼 왔는데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의문"(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 "정치 불개입을 바라는 국민 기대에 어긋난다"(양형일 통합신당모임 대변인)는 반응들이 그렇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국정의 마무리를 잘하고 다음 일은 다음에 맡겨 두는 게 옳다"며 "대통령이 자꾸 언급하면 대통령의 이미지만 더 실추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손 전 지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은 "노 대통령의 비판으로 (손 전 지사가) 비노무현.비한나라당이라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됐다"며 "고 전 총리와는 달리 노무현 디스카운트(가치 절하)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논란이 가열되면 국민의 시선이 여권에 쏠리는 '흥행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노 대통령과 손 전 지사 사이에 대립각이 분명해지며 범여권 주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는 불투명해졌다. 손 전 지사의 '제3지대' 구상은 노 대통령과 거리가 있다. 이럴 경우 여권의 대선 주자 논의는 최소한 두 갈래 이상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동교동의 대선 접근법이다. DJ는 "(범여권이) 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선거연합을 이뤄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의 주변에선 "'대북송금 특검은 잘못'이라고 한 손 전 지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 전 총장에 대해서도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며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여권에서는 자칫 DJ와 노 대통령이 각각 다른 주자 그룹을 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DJ 측에선 "DJ가 특정인을 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범여권 대선 논의는 점점 미궁 속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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