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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전략목표 달성했다”(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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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서울국제포럼이 주최한 서유럽 현지에서의 우리나라와 영·독·불 3개국 학자·전문가간의 세차례 원탁토론회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범위는 우리나라와 이들 각나라의 국내 정치·경제사정,주변지역정세,양국상호관계에 이르는 광범한 것이었다. 한국의 국내 정치·경제상황,남북한 관계등 한반도정세,EC통합에 대한 찬반론과 전개전망,소연방의 해체가 유럽 및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독일통일의 부담과 교훈 등에 대해 서로의 관점과 의견이 밀도 있게 교환되었다.
○스스로 함정 빠진꼴
그 가운데 북한의 핵무기개발문제와 북한 내부정세가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영·불·독 3국의 유수한 국제문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나아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강제핵사찰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같은 지역불안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들이었다.
토론과정에서는 핵개발을 시도하는 북한의 의도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도 있었다. 대체로 북한이 하나의 정치전략적 차원에서 핵무기개발카드를 들고 나왔다면 그것은 의도했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략일 수 있으나,핵무기보유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국제적인 제재로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재난이 되리라는 분석이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남한으로부터의 핵무기철거·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등을 주장해 왔다. 그러한 북한의 주장은 그동안 한미양측에 의해 일축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긴급한 필요는 미소냉전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최근 이를 수용하는 한미양측의 정책상대전환을 가져왔다.
당면한 북한­일본간의 국교정상화문제에 있어서도 여러 선행조건들이 제기되었지만 이제는 북한의 핵개발포기만으로 압축된 형국이다.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보유하지 않겠다고만 한다면 북­일간 국교정상화의 장애요인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미­북한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문제에만 융통성을 보인다면 미­북한접촉레벨의 격상,양자관계의 눈에 보이는 개선이 이룩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남북한관계도 그렇다. 파국적인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막기 위해 우리측은 남북대화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은 핵무기개발카드로 수십년동안 이루지 못했던 정치전략적 목표를 일거에 진전시킬 기회를 잡았다는 관점이 토론에서 제시됐다.
그러나 북한입장에서 이러한 오기는 그들의 핵개발카드의 진정한 의도가 만일 그들이 정말 핵무기를 개발,보유하려고 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제적인 제재를 유발하는 대재난이 되고 말 것이다.
이번에 의견을 들을 기회가 영·독·불 세나라 사람에 한정되었지만,이들이 모두 안보·전략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는 우리만의 관심사를 넘어선게 분명하다.
○저지에 국제적 공감
세계의 관심사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기필코 저지해야겠다는 국제사회의 강한 공감대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개발·보유문제에 대해서만은 우리도 확고한 자세를 견지해야 되겠다는 확신을 거듭 굳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주목을 끌었던 대욕은 북한체제의 생존가능성과 남북한의 통일환경에 대한 토론이었다.
한국측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상황이 무척 어렵기는 하나 김일성 사후라면 몰라도 현재로선 체제의 큰 변화를 대다볼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신중한 전망을 제시했다. 또한 남북고위급회담의 지속,남북기본합의서에 담을 항목에 대한 합의,남북간 직·간접교역의 증대,북한의 두만강경제특구에 대한 투자진출 협의등 남북한 관계의 개선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쪽 전문가들은 북한체제의 생존능력에 대해 우리측에 비해 훨씬 회의적이었다.
소련·동구 공산체제의 몰락과 해체를 목도한 유럽전문가들은 소·중과의 「특별관계」가 배제된 북한경제의 활력과 자생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들은 대체로 북한체제가 얼마 안있어 막다른 단계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 전문가들은 독일통일 1∼2년전부터 자기들은 독일전문가들에게 동구의 경제·정치상황에 비추어 체제의 몰락이 불가피 하므로 몇년새에 자연스럽게 독일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오히려 서독 전문가들은 동독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았었다는 얘기까지 하면서 우리의 신중한 정세판단이 너무 주관적일수도 있다는 지적마저 서슴지 않았다.
○격변시대 대응력을
어느쪽 정세판단이 보다 객관적일는지는 앞으로 두고볼 일이나 아무튼 유럽전문가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망은 멀지않은 장래에 독일통일식의 상황이 닥쳐오리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물론 한반도 정세는 독일과는 다르고 대소의존성이나 체제구심력이란 면에서도 북한과 동독은 크게 다르다. 또 독일식 흡수통일이 가져올 경제·사회적 부담을 우리체제가 과연 감내할 수 있겠느냐는 차원에서도 독일식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통일정책은 일단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같은 격변의 시대에는 예측하고 추구하지 않았던 변화가 얼마든지 닥쳐올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기대 또는 정책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과 닥쳐오는 어떠한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태세를 항상 예비해 두는 것은 별개문제다.<본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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