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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서울야화(1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그동안 많은 총애를 받았사옵고, 또 적지 아니한 폐를 끼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 먼저갑니다. 여러분,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l974년2월3일 주학문.』 이런 색다른 광고가 1974년2월7일 동아일보에 실렸다. 그 옆에는 미망인과 지인대표 최승만의 부고가 게재되었다. 진학문이 미리 자신의 부고를 써놓고 사망날짜만 최승만이 나중에 적어넣은 것이었다.
2월3일에 별세해 5일에 장사를 지내고 7일자로 광고를 낸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사망광고를 내다니 별일도 다 있다고 모두들 떠들썩하게 화제로 삼았다.
순성 진학문은 이런 기벽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진학문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신익희·변영태와 동창이었고 춘원·육당과 문우이며 송진우·이상협과 같은 언론인이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전국경제인협회 회장도 지내 실업계에도 친구들이 많았다.
순성의 평생 지기였던 김을한은 그의 생애를 언론계시대·만주국시대·경제계시대의 3기로 나누었는데 대체로 옳은 분류라고 할 수 있다.
보성중학과 조도전대학에서 변영태·신익희와 동창이었고, 춘원·육당과는 신문관이래의 동지였고, 송진우·이상협과는 동아일보기자때부터 같은 신문인이었고, 말년에는 김연수·김용완등의 추대로 전경련회장이 되었었다.
그는 문인으로, 언론인으로, 경제인으로 실로 다방면에 걸친 다채로운 경력을 가졌으나 아까운 것은 어떤 한 방면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점이다.
신문기자로 출발해서 동아일보·시대일보·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명기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제 와서 그를 신문기자로 쳐주지는 않는다.
문인으로서는 잡지 『소년』 『청춘』에 많이 투고하였고,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암영』을 연재했지만 지금 와서 그를 소설가로 쳐주는 사람도 없다.
만주국시대에 그는 「오족협화」라는 명목으로 조선민족을 대표해서 내무장관적의 참사관을 지냈다. 그때 그는 조선사람을 위해 어려운 일을 많이 했으므로 친일파라는 평가는 면했지만 그 자리가 떳떳한 자리는 아니었다.
조선농민들이 몇햇동안 피와 땀으로 일궈놓은 수만석짜리 옥토를 새로 들어오는 일본 이민에게 넘겨주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진학문은 당장 관동군사령부로 달려가 이타가키(판원)참모장에게 강경하게 항의한 결과 다른데로 더 좋은 땀을 대신 주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23년 일본의 관동버잔재때 무정부주의자 오스기 사카에(대삼영)와 그의 아내·어린 조카딸을 무참하게 목졸라 죽인 흉악무도한 동경 현병대장 아마카스(감박) 대위가 만주에 건너와서 만주 국책회사인 만주영화회사 이사장으로 있었다.
이 사람은 방약무인으로 행동했는데, 특히 조선사람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천대를 함부로 해서 1백만이 넘는 재만동포들이 그를 살인마라고 부르며 몹시 미워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던 진학문은 어느날 조선사람문제에 대해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관동군 참모장이하 여러 장성들이 모여앉은 자리에 참석했다.
여기서 그는 그동안 아마카스가 조선사람에게 저질러온 부당한 멸시와 천대에 대해 구체적 예를 들면서 도도한 열변으로 그를 공박하였다.
아마카스는 흉포한 악당이지만 꼼짝 못하고 공박당하고 묵묵부답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뒤에 아마카스는 진학문을 무서워하며 경의를 표해왔고 재만동포에 대해서도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당시의 재만사업가였던 공진항씨의 증언이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진학문은 열렬한 애국자였다. 그의 아버지 진상출도 영국해군의 부당한 전남 고하도 점령에 대해 철저하게 항거하여 그들을 물리친 사람이다. 아들 진학문도 아버지와 뜻을 같이하여 부정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끝까지 항거하는 불같은 투쟁심이 있었다.
그가 신문기자로서 대성하지 못한 것도 좋다. 문사로서 좋은 작품을 써서 이름을 척추에 남기지 못한 것도 좋다. 나는 그의 인도주의정신, 높은 휴머니즘을 존경하고 사당한다. 애국심도 의협심도 모두 그 근본은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가 남과 다르게 자신의 사망부고를 신문에 내서 생전의 지기와 벗들의 후의에 감사를 표한것은 이같은 인도주의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웃을 일이 아닌 것을 나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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