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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 지휘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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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상임지휘자 없이 표류하던 지방 교향악단을 맡아 「탁월한 조련사」로 칭송 받던 지휘자와 그 단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지휘자가 사표를 내던진 채 잠적하고 말았다. 이 느닷없는 사건의 발단인즉 연주단원 채용 및 협연자 선정에서 그 지방출신 음악인들을 소외시켰다는 것.
지휘자는 교향악단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지역 음악인들과 음악전공대학생들까지 합세해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교향악단은 결국 1년 가량 상임지휘자 없이 또 한차례 표류하다 결국 외국인 상임지휘자를 맞아들였고, 떠나버린 지휘자는 최근 신생 지방교향악단의 상임지휘를 맡아 의욕적으로 새 출발했다.

<종종 퇴진압력>
또 다른 지방교향악단의 한 지휘자는 운영비 유용문제로 단원들과 옥신각신하다 결국사표를 냈다. 그러나 마땅한 후임이 없는 데다 시당국이 급료인상을 약속하며 단원들을 설득함으로써 지휘자가 원대 복귀해 1년 가까운 공백기를 끝냈다. 이 사건은 한 단원이 지휘자의 음악해석에 이의를 제기한 것을 계기로 생긴 감정대립이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됐던 것.
그밖에도 교향악단 단원들은 연습과정에서 아이 나무라듯 모욕적인 언사를 써가며 단원들을 몰아세운다는 이유로 초청된 객원지휘자를 거부하는가 하면 단원평가 오디션이 불공정하다며 상임지휘자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또 교향악 축제 등을 계기로 모처럼 서울 공연나들이를 했다가 「학예회 수준」이라느니, 「형편없는 젓가락질」이라는 등으로 혹평 받은 후유증에 오래도록 시달리는 지휘자도 흔하다.
카라얀처럼 「음악의 황제」라는 등의 존경과 명예와 부를 두루 누리는 것은 고사하고 걸핏하면 동네북이 무색하도록 이래저래 내둘리는 한국의 교향악단 지휘자들은 무슨 맛에 지휘봉을 휘두르는가.
『음악세계를 마음대로 가꿀 수 있는 절대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수십 명, 수백 명이 나의 손끝과 표정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긴장하며 최상의 음을 내려 애쓰고, 더욱이 청중들이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줄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게 없지요. 무보수 단원이 태반인 교향악단 지휘자들이 자신도 무보수로 일하면서까지 지휘대를 지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남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음악적 도취가 지휘자를 사로잡는 가장 큰 매력이라며 한 지휘자는 웃는다.
이 같은 음악세계를 일구기 위해 지휘자가 치러야할 대가는 참으로 엄청나다. 음악적인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저마다 개성이 다른 1백 명 가량의 연주자들이 인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포용력과 지도력도 갖춰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이 세계 수준 급으로 길러내기 가장 어려운 문화 예술인은 교향악단 지휘자』라는 얘기는 지금껏 「정설」처럼 통한다.
지난 89년 정명훈씨가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에 취임함으로써 이 말은 잠시 설득력을 잃는 듯 했다. 그러나 정씨는 일찍이 8세 때 미국에 유학했고, 그후 계속 해외에서 그 역량과 명예를 쌓았을 뿐 아직도 한국에서 자라나 한국 음악계를 빛내는 지휘자는 손꼽기 어렵다.

<능력 인정 인색>
이따금 외국의 정상급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해 호평 받는 한국인도 있지만 국내 음악계는 『그럴 리가 없다』고 일축하거나 『지휘 경력을 장식하기 위해 이런 저런 수단을 동원, 지휘봉을 한번 휘둘러 봤을 것』이라며 여전히 냉담한 반응들이다.
그러나 외국의 유력 일간지나 전문지가 근거 없이 호의적인 평론을 실어줄리 없다는 일부는 『드물게 제법 훌륭한 한국 지휘자도 국내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야말로 큰 문제』라며 안타까워한다. 연주단원들의 존경을 받기 어려운 국내 지휘자가 흔한 것도 사실이다. 전문적인 지휘수업 부족 때문에 음악해석의 측면에서 단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아예 악보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연습과정이 아닌 실제공연에서도 이런 실수가 생기는 바람에 지휘자에 대한 존경은 커녕 노골적으로 비웃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30개에 이르는 국내 교향악단들 가운데 부천 필처럼 지휘자와 단원들이 별다른 갈등 없이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최선의 연주활동을 펼치는 경우는 거의 예외에 가깝다. 걸핏하면 단원 재위촉 및 승진을 위한 오디션이라든가, 협연자 선정·지휘 능력 등을 둘러싼 시비가 벌어져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지휘자가 교향악단을 떠나기 일쑤.
그러나 심각한 지휘자난 때문에 오랫동안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가장 없는 대가족」이니, 「선장 잃은 난파선」으로 비유되는 교향악단들이 심심지 않게 생긴다. 현재 인천·수원·춘천시립교향악단은 상임지휘자가 없고 대구시향에서 분리 독립한 대구필은 첼로연주자가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한국 교향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 역시 상임지휘자 없이 번번이 객원 지휘자를 초빙하는 실정.
KBS교향악단은 88년 원경수씨가 단원들과의 불화로 상임 지휘자직을 물러난 후 지금껏 후임을 정하지 못한 채 예술총감독과 전임지휘자 금난새씨를 중심으로 운영해왔다. 결국 그 동안 수석 객원 지휘를 맡았던 독일인 오트마 마가에게 92년 4월부터 2년간 KBS 상임지휘자직을 내주게 됐다.
따라서 국내 주요 교향악단들의 잇단 「외국 상임지휘자수입」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도 스스로 쓸만한 지휘자를 길러낼 때까지의 공백을 외국인 지휘자들로 메웠다며 일정기간은 어쩔 수 없는 「긴급조치」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그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냐는 점인데 지금으로는 그야말로 난망. 현재 국내 음대에는 서울대와 한양대 대학원에 지휘전공과정이 있을 뿐 학부에는 지휘과가 전무한 실정이다.
1945년 고려교향악단이 창단된 이래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향악운동을 펴온 김생려·안익태·임원식·김만복·홍연택·정재동 씨 등 지휘 제1세대들이 대부분 작고했거나 제2선으로 물러났다.
민간교향악단인 코리안심퍼니 오키스트라의 홍연택씨가 유일한 현역일 뿐 약10개 교향악단이 우후죽순처럼 창단된 80년대를 거치면서 제2세대 지휘자들이 포진하게된 것이다.
이 같은 세대교체가 좀더 「보기 좋게」진행되지 않고 갖가지 민망한 불협화음을 동반했던 후유증은 아직도 제대로 가셔지지 않은 채 교향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걸핏하면 「몰아냈다」거나 「쫓겨났다」는 식으로 상임지휘자가 바뀌는 혼란기가 끝나야 비로소 한국에도 교향악 문화가 정착되리란 지적은 지휘자와 연주단원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한편 정상적인 교향악 활동을 뒷받침할 만한 여건이 전혀 안돼 있는 상황을 간과한 채 지휘자와 단원들이 서로 「변변치 못한 연주활동」의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음악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시가 교향악단 운영을 적극 지원하되 교향악단이 점차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각 교향악단 나름의 특성을 가진 활기찬 연주단체로 독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게 되리란 것이다.

<시향예산 삭감>
그러나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방의회 관계자들의 몰이해 및 무관심 때문에 각 지방시향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상당수의 지휘자들은 매우 긴장하고 있다. 『지휘자가 음악 공부하랴, 단원들 연습시켜 매달 몇 차례씩 공연하랴, 후원기업 관계자나 관계공무원들 설득하랴, 거기다 대개 대학교수직까지 겸하고 있으니 무슨 수로 멋지게 지휘합니까. 그렇지만 월급이 1백 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대학교수 겸임 말고 지휘나 잘하라고 요구하기도 힘들지요.』 정명훈씨 말고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 출신 지휘자가 계속 나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평론가 탁계석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음대에 당장 지휘과를 만들지 못한다면 매년 한 두 명씩이라도 지휘전공 신입생을 뽑아 교육시키고 각 교향악단들은 지휘전공학도들에게 예비지휘자수업을 시키는 등의 노력을 계속해야 언젠가 「아름다운 음의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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