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대회」를 보는 눈(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흙만지는 사람은 자기가 일한 만큼만 얻고자 할 뿐인데 왜 조상대대로 살아온 농촌에서 생계의 위협을 느껴야 합니까.』
26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단공원.
전농주최 「미국쌀 수입 저지와 전량수매,쌀값보장을 위한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이춘옥씨(61·전북 장수군)는 울분에 찬듯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이날 대회참석을 위해 만사 제쳐놓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절버스를 타고 상경한 반백의 공덕수씨(63·충남 당진군)는 『죽으나 사나 농사밖에 모르는데 아무 대책없이 값싼 수입쌀이 들어오면 어디가서 뭘하고 살란 말이냐』며 정부의 농촌에 대한 무관심과 대책을 개탄했다.
심화되는 이농현상의 영향으로 이날 대회장에는 주름진 이마에 색색의 구호띠를 두른 시골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어 쌀개방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농은 이와 함께 미수매쌀 모두를 정부기관앞에 쌓고 농가부채를 현금 대신 쌀로 갚는 등의 투쟁방법도 마련했다.
오후 3시30분. 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풍물패를 앞세운채 대학로로 행진,인도변의 시민·학생들에게 절박한 농촌사정을 호소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등 수입체인점과 외국제품이 즐비한 대학로변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젊은이들은 농민들의 시위에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시위행진을 마친후 김순옥 할머니(55·충남 부여군)는 『속터지는 농촌사정을 알리러 왔건만 대부분 서울 시민들이 남의 일보듯 해 새벽부터 부산떨며 올라온 것이 아니옴만 못하다』며 풀썩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후 6시30분쯤. 농민들을 태운 버스가 하나 둘 대학로를 빠져나가 귀향길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머지 않아 사전속에만 나오는 잊혀진 말이 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남상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