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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콘서트 홀이 된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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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에게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을 꼽으라면 십중 팔구 오스트리아 빈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을 말한다. 새해 아침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곳이다. 황금빛으로 수놓은 내부 장식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신년음악회 때처럼 굳이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공수해온 꽃으로 정면을 장식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볼거리가 많다. 음향이 좋기 때문에 눈도 즐거운 것인지 화려한 조각상과 아름다운 천장 벽화 때문에 소리가 금빛으로 들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1870년 개관 연주를 듣고 한 평론가는 음악이 건축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빈의 평론가 칼 에두아르트 셸레는 "일상을 떠올리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축제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며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황금홀은 음악을 듣기 위한 이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하지만 건물 그 자체가 색채와 디자인, 건축으로 이뤄진 하나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무직페어라인 황금홀(1744석)에 앉아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듣노라면 건축과 음향의 완벽한 조화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세계적인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무직페어라인에서 지휘하기 전까지는 음악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풍만하면서도 명료한 소리가 온몸을 휘감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음향 설계가 등장하기 전에 건축된 것이어서 '음향학의 기적'이라고도 말한다. 1970년 개관 100주년을 맞아 한스 바이겔은 "단지 황금홀에 관한 문제라면 마이크를 발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직페어라인은'음악 모임'이라는 뜻이다. 건물 소유주는 1812년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대본작가인 요제프 존라이트너의 주도로 결성된 빈 음악애호가협회. 1870년 1월 6일 무직페어라인이 개관하기까지에는 베토벤의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의 재정적 도움이 매우 컸다.

덴마크 태생의 건축가 데오필 폰 한젠은 그리스에서 유학한 신고전주의 건축가다.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빈 미술아카데미, 빈 증권거래소 등이 그의 작품이다. 건물 곳곳에 그리스 건축의 영향이 배어있다. 황금홀에는 32개의 여신상이 발코니석을 떠받치고 있다. 조각가 프란츠 멜니츠키의 작품이다. 아우구스트 아이젠멩어가 그린 천장 벽화'아폴로와 9명의 뮤즈신'등 풍부한 내부 장식이 좌우 벽면 상단의 창문 40여개와 20개의 발코니석 출입문과 함께 객석 구석구석에 소리를 확산시킨다. 길이 48.8m, 너비 19.1m, 높이 17.75m로 만석(滿席)시 잔향 시간이 2초 0이다. 실내를 대부분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마감했고 무대와 출입문만 목재를 사용했다. 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말러 등 고전.낭만주의 교향곡을 연주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홀은 없다. 보스턴심포니홀이나 탱글우드 세이지 오자와홀도 이 황금홀을 모델로 설계한 것이다. 보스턴 심포니홀은 빈 무직페어라인의 나체 여신상까지 그대로 본따서 설계했다가 보수적인 보스턴 상류층으로부터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듣고 결국 여신상에 옷을 입혔다는 후문이다.

무직페어라인이란 '음악애호가협회', 즉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의 약칭이다. 건물 정면에도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 건물의 주인이다. 굳이 옮기자면 '음악 친구들의 모임'이나'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정도가 되겠다. 1812년 베토벤의 오페라'피델리오'의 대본 작가인 요제프 존라이트너의 주도로 결성된 협회다. 작곡가 브람스는 1872~75년 음악애호가협회 소속 합창단 지휘자로도 일했다.

브람스 홀(600석)은 클라라 슈만이 브람스의 권유를 받아들여 피아노 독주회로 개막 공연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브람스도 이곳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초연했다. 무직페어라인 창설 125주년을 맞는 1937년에 이 홀은'브람스 홀'로 명명됐다. 길이 32.5m, 너비 10.3m, 높이 11m의 비율이나 뛰어난 음향 효과로 볼 때 황금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Kammersaal'은 1996년에 개보수 공사를 거쳐 1996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같은 해 타계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1918-96)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아이넴 홀은 소규모 음악회, 강연회, 연습실로 쓰인다. 황금홀에서 녹음을 할 경우 녹음 장비와 스피커를 갖춘 조정실로 변신한다.

빈 필하모닉은 이곳에서 연간 30여회의 정기 연주회를 한다. 건물 내에 음악애호가협회 사무실, 음악출판사 우니페어잘 에디치온, 빈 남성합창단, 빈 필하모닉 사무국 등이 입주해 있다. 초창기에는 건물 내에 회원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원까지 있었다.

개관 당시 교향악 연주회의 관습에는 중간 휴식(인터미션)이 없었다. 음악회 프로그램도 요즘보다 훨씬 길었다. 샴페인이나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오페라하우스에서나 볼 수 있었다. 오페라극장이 사교 공간이라면 콘서트홀은 정말 음악이 듣고 싶어 가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교향악단 연주회에서도 중간 휴식의 전통이 생겨났다. 그래서 애초에 지어 놓은 로비는 물품 보관소 역할 밖에 하지 못할 만큼 협소했다.

2000년부터 4년간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벌인 것은 음향이 나빠서가 아니라 로비와 백스테이지 공간이 비좁았기 때문이다. 지하 공간을 파서 연습실 겸 다목적홀(유리홀)도 만들고 파티와 세미나 등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공간을 확충했다. 인근 지하철역 플랫폼 위의 지하공간에 악보 도서관, 고악기 보관소, 창고도 마련했다.

이젠 무직페어라인에서 일요일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게는 10회의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린다. 지하 공연장은 벽면과 바닥의 재질에 따라 '유리'(380석),'쇠'(90석),'돌'(70석),'나무'(50석) 로 명명됐다. 그중 가장 큰 무대가 유리 홀이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오페라와 바덴바덴 축제극장을 디자인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빌헬름 홀츠바우어와 디터 이레스버거 콤비가 설계를 맡았다. 가장 큰 특징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두께 8 ̄16㎜짜리 유리 판넬을 움직이면 행사의 성격에 맞는 음향 조건을 연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100명, 합창단 140명 등 240명의 연주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리허설 룸으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재즈 콘서트, 세미나, 전시회, 기자회견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가변형 객석 구조여서 테이블을 놓으면 200명을 수용하는 레스토랑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로비와 통로에는 조각가 빈센츠 필츠(Vincenz Pilz)가 제작한 바흐, 글룩, 모차르트, 베버의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1911년 개보수 공사 때 건물 정면 야외에 있던 것을 로비로 들여온 것이다. 이들 조각상과 나란히 브람스, 바그너, 슈베르트의 흉상이 놓여 있다. 프란츠 리스트(카스파르 폰 줌부슈의 1867년작), 클라라 슈만(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하우스만의 1896년작)의 흉상은 계단에 있다. 건물의 측면 출입구에는 1970년 C R Welter가 만든 베토벤상이 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러 올 때마다 이 조각상에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식 명칭: Musikvereinsaal

◆홈페이지: www.musikverein.at

◆건축가: 테오필 폰 한젠(1813~91)

◆객석수: 황금홀 1744석(입석 300석 별도), 브람스홀 600석, 유리홀 380석, 나무 홀 50석, 메탈 홀 70석, 돌 홀 60석

◆부대시설: 아이넴 홀, 음악자료실

◆개관: 1870년 1월 6일

◆리노베이션: 2001-2004년

◆상주단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입주단체: Orchesterverein der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Singverein der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빈 남성합창단, 음악애호가협회, 음악출판사 우니페어잘 에디치온, 오트마 랑 바이올린 제작소

◆초연: 요한 슈트라우스'빈 기질 왈츠'(1873년), 브람스'교향곡 제2번'(1877년)'교향곡 제3번'(1883년), 차이코프스키'바이올린 협주곡'(1881년), 브루크너'교향곡 제4번'(1881년)'교향곡 제8번'(1892년)'교향곡 제9번'(1903년), 쇤베르크'정화된 밤'(1903년)'펠레아스와 멜리장드'(1905년)'구레의 노래'(1913년), 베베른'파사칼리아'(1908년), 말러'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1904년)'교향곡 제9번'(1912년)'교향곡 제10번'(1924년), 라벨'왼손을 위한 협주곡'(1932년) 등

◆주소: Boesendorferstrasse 12

◆교통: U1, U2, U4 칼스플라츠 역, 전차 1, 2호선

◆매표소: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30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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