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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늘린 SKC 천안공장 구조조정 '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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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천안세관은 최근 SKC 천안공장을 불시에 점검했다. 예전에 들여오지 않던 반도체 칩 등 첨단 원자재의 수입이 근래 들어 급증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살핀 세관 관계자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디오 테이프 등을 만들던 이 공장이 ▶휴대전화▶2차전지▶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필름 등과 같은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문닫을 위기를 겪었다. 주력 제품이던 비디오 테이프가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적자가 쌓였다. 부실 사업장이란 낙인이 찍혀 한때 공장을 처분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살 길을 찾아야 했고, 결국 공장의 사업 구조를 확 뜯어고치는 길을 택했다. ▶비디오 테이프▶콤팩트디스크(CD)▶플로피디스크 등의 생산 라인을 매각하거나 중국으로 옮겼다. 그 자리에 새 사업의 씨를 뿌려 5년 만에 SKC가 내세우는 첨단 공장으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현장 직원들은 전원 전환배치됐고, 신규 사업이 하나 둘씩 늘면서 최근 2년 동안 일자리가 1백50여개 더 늘어났다.

◇'애물단지'가 효자노릇=천안공장의 겉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2차전지 생산공장을 지난 9월 새로 지은 것을 빼면 5년 전 그대로다. 하지만 공장 속은 완전히 바뀌었다. 비디오 테이프를 만들던 곳에서는 휴대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TFT-LCD필름 라인도 그 자리에 함께 들어섰다. 특히 TFT-LCD필름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5%나 된다. CD를 찍어내던 공장은 PDP필터를 만들고 있다.

이 공장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7천4백억원. SKC 전체 예상 매출액의 60%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5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공장 임직원들은 올 초 기본급 1백% 안팎의 성과급을 받았다.

김형욱 공장장은 "유기EL 등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을 더 늘려 5년 후에는 2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종합 정보통신(IT)소재 사업장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뜰한 신규 투자=첨단 생산라인이 들어선 만큼 투자 규모가 상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金공장장은 "새 라인을 깔면서 들어간 돈은 모두 4백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기존에 쓰던 설비의 구조를 손질해 재활용하는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디오 테이프를 코팅하던 설비는 지금은 LCD필름 생산기계로 바뀌었다. 이 기계를 납품한 일본공작기계 업체가 되레 벤치마킹을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김석준 공장지원팀 과장은 "알뜰한 신규 투자로 공장을 변모시키자 동양엘리베이터 등 인근 업체의 견학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감원 없이 업종전환=기존 사업을 모두 철수하자 노조의 동요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감원을 하지 않았다. 새 일감에 적응하도록 교육훈련을 했다. 신규 설비가 들어오면 제품 특성에 맞는 조립기법 등을 가르쳤다. TFT-LCD필름 생산 등 예전에 해왔던 일과 비슷한 공정에는 가급적 기존 인력을 투입했다. 휴대전화 등 새 라인엔 신입사원을 주로 기용했다. 이에 따라 이 공장의 직원은 5년 전보다 2백여명이 늘어 1천명을 넘어섰다.

천안=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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