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4회담/한국 반대에 당황한 미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언론 “한국서 너무 과민반응”/일부선 역사·환경 무시한 제안 지적도
미국은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하려던 남­북한·미·일·중·소 6자(2+4) 회담을 한국과 중국이 거부,사실상 성사가 어렵게 되면서 이에 기대를 걸었던 미국이 당황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유일한 우방격인 중국이 대북한 압력을 위한 이러한 회의에 선뜻 응하지 않을 것임을 예견했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점 때문에 미국은 중국보다 한국에 대해 더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언론들도 베이커의 제안이 무참하게 거부된 것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베이커의 제안이 냉대받았다』고 쓰고 있으며 뉴욕타임스지도 『베이커의 구상이 좌절되었다』며 그 배경을 소상히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노골적으로 한국에 불만을 표시하는 기사까지 쓰고 있다.
미국을 제외시키려는 말레이시아의 동아시아경제협력(EAEC)안을 한국이 앞장서 막아달라는 베이커의 요청을 이상옥 외무장관이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베이커가 눈을 부릅뜨자」 뒤늦게 응했다는 기사까지 이 신문에 실렸다.
이런 유의 기사 행간속에는 미국의 제안을 한국이 반대할 수 있느냐는 투가 배어 있다.
미국은 한국이 6자 회담을 반대하는 것은 이를 잘못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6자 회담이라는 것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보자는 방편으로 구상된 것인데 한국이 이를 비약시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베이커의 보좌관 말을 인용해 『이 회의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자는 것도,심지어 통일에 도움을 주자고 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북한의 핵무기문제를 풀어 보자는 것』이라며 한국의 과민한 대응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가질 경우 제일 답답할 나라가 바로 한국인데 왜 한국이 앞장서서 찬물을 끼얹는 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점에서 이번 제안과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베이커 국무장관이 미 국제정치전문계간학술지 포린 어페어스지에 이 구상을 발표하기전 한미간에 몇차례 실무차원에서 비슷한 협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막연하게 『관계국들과 힘을 합해 국제적 압력을 넣는 방법이 어떠냐』는 식이었지 「2+4」식의 구체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안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면서 한국 국민이나 정부가 보인 반응에 미국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의 역사와 환경에 그만큼 무지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강대국들 개입이 어떤 반향을 일으키리라 상상못했다는 것이다.
뒤늦은 얘기지만 이런 식의 회의가 필요하다면 한국을 내세워 성사시켜도 될 일을 미국이 앞장서는 바람에 오히려 그르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한국이 이 회의를 반대했으나 이러한 다자구조를 통해 북한에 압력을 넣어보자는 방법을 포기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베이커 국무장관이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이자 세계적인 문제거리』라고 지적하며 『북한에 대해 국제적인 정치·외교압력을 계속 하겠다』는 의사를 서울의 기자회견에서 표명한 것도 이 회의에 대한 미국의 집착을 표시한 것이라고 미언론들은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이 공식적으로는 『북한을 몰아붙여서는 안된다』고 했으나 베이커 장관이 중국 방문기간중 내막적으로 이 회의를 둘러싼 어떤 식의 타협을 받아내올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여하튼 미국은 이런 식의 회의가 성사되든,못되든간에 이런 움직임들이 북한에 또하나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때문에 이 카드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