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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경'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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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가.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탑신 내부 사리함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최소한 석가탑 건립 연대인 751년보다 앞서 제작된 것으로 인정돼왔다.

그러나 2005년 9월 15일 본지는 의문을 제기했다. 석가탑이 고려시대인 1024년 3월 보수공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중수기(重修記)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66년 당시 붓글씨로 깨알같이 이두와 한문을 적은 손바닥 만한 한지 110여 쪽이 눌어붙은 덩어리가 발굴됐다.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 불리다가 2005년 그 일부가 중수기임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고려시대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다라니경을 탑에 넣었을 가능성, 즉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인쇄물이 아닐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당시 본지 보도의 취지다. 이 같은 의문을 푸는 단서가 되는 내용이 중수기의 해석을 통해 일부 드러났다. 9일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 보존처리를 통해 판독한 중수기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박물관은 묵서지편이 ▶1024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 ▶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보협인다라니경 ▶보시명공중승소명기 등 최소 4종으로 구성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문과 이두로 된 중수기는 여러 곳이 훼손돼 읽을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상태다.

본지는 김언종 고려대 교수(한문학)에게 해석을 의뢰한 결과 다라니경을 당초 석가탑 건립 당시에 넣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했다. 김 교수는 "중수기의 전후 문맥상 다라니경은 건립 당시 석가탑에 들어있던 것을 일단 꺼내서 탑을 해체 보수한 뒤 다시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중수기에 기록된 물품의 내용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고, 별개의 형식으로 기술돼 있는 것을 들었다.

중수기 앞쪽에는 우선, 무너진 절을 해체해서 다시 짓는 장면을 서술한 뒤 '무구정광다라니경, 금으로 된 병, 사리 8과, 구리 도금한 칼 한 묶음'등의 물품을 안장(安贓:편안하게 넣어둠)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어 석가탑을 보수하고 돌사자 등을 다시 조각하는 과정이 나온 뒤 스님 등이 어떤 물품을 기증했다는 기록이 뒤쪽에 보인다. 예컨대 "징모(澄, 다음 글자는 판독 불능)스님이 보협인다라니경, 정향과 청목향, 구리로 만든 상자를 바쳤다"는 내용이다.

중수기 뒤쪽 부분이 앞쪽과 다른 점은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를 보면 첫 번째 목록의 물품들은 석가탑을 건립할 때 있던 것을 중수할 때 꺼냈다가 다시 넣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시주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한문은 한 글자만 틀려도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빠진 글자가 많은 문서를 근거로 확실한 결론은 내릴 수 없다"고 전제하고 "관련 분야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당기간 연구를 해야 중수기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 때의 불경이라는 다른 근거도 물론 많다. 불교서지학자인 박상국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신라 때 탑에서만 발견되며 고려로 넘어오면 무구정광다라니경 대신 보협인다라니경으로 완전히 대체된다"고 지적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굴된 신라 탑은 10여 기에 이르지만 고려 탑에서는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굴된 예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조현욱 기자

◆무구정광다라니경=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의 해체.복원공사가 진행되던 1966년 10월 13일 탑신부(塔身部)제2층에 안치된 사리함 속에서 발견됐다. 이때 석탑 내부에서 함께 발견된 총 28점의 일괄유물이 국보로 지정됐다. 두루마리 모양으로 너비 약 8㎝, 길이 약 620㎝이다. 제작 시기는 700년대 초~751년으로 추정해왔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재위 685~704년)가 집권한 기간에만 주로 통용되고 그 후에는 자취를 감춘 글자인 측천무후자가 경문 속에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또 석가탑의 건립연대인 751년을 그 하한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경(印經)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770년 인쇄)보다 20년이 앞서는 셈이다. 중국 학자들은 측천무후자를 근거로 다라니경이'702년경 중국 낙양에서 인쇄해 신라에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불경에는 새 글자를 안 써도 좋다"는 지시를 내린 바 있어 중국에서 인쇄된 불경에는 그런 글자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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