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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자폐증 소년의 힘겨운 삶 … 그래도 '툭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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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벤은 나와 조금 달라요!

캐시 후프먼 글, 최정인 그림, 신혜경 옮김, 스콜라, 128쪽, 8500원, 초등 3학년부터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년 벤이 주인공이다. '아, 장애우 친구를 도와주는 착한 아이 얘기겠구나'란 선입견은 버릴 것. 친구 앤디는 벤의 장애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낱말이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 때도 있지만 선행(善行) 차원이 아니다. 친구를 있는 그대로, 한 치의 모자람 없이 받아들이고 그냥 같이 재미있게 논다. 진정한 인간애다.

기본 줄거리는 판타지다. 벤과 앤디는 흙장난을 하다가 파란 유리병을 발견한다.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여는 순간 하얀 연기가 퍼져 나오고, 벤과 앤디는 무심코 소원을 빈다. 유리병 안에 정말 요정이 있었던 걸까. 농구부 선수로 뽑히길 바라던 앤디는 키가 쑥쑥 자라고, 돈이 많았으면 하던 벤은 로또에 당첨됐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그 뒤에 불거진다. 엄청난 당첨금을 받게 된 벤의 아빠가 새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지만, 벤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이사를 싫어한다. "이 녀석한테 필요한 건 따끔한 매"라고 흥분한 아빠. 병원에서 아스페르거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고서야 벤을 이해한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가 읽기 적당한 동화인데도 이야기는 꽤 입체적이다. 수업시간에 펜을 물고 있다는 이유로 비이성적으로 벤을 야단치는 교사, 공연히 벤을 괴롭히는 나쁜 친구들, 엄마는 돌아가셨고 이제 재혼하려는 아빠 등.

얽히고 설킨 세상살이 앞에서 "그래, 그게 인생인걸"이라며 툭툭 터는 벤의 자세는 어른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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