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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생태계 파괴」중병/입산객 폭발 잇단 산사태 방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천연보호구역 곳곳 “흙마당”/원시림·희귀생물 멸종위기
【한라산=신상범기자】 국토남단의 영산 한라산이 중병을 앓고있다.
산을 파헤쳐 만든 5개 등산로(총연장 43㎞,너비 1.5m) 개설과 무턱댄 관광객 입산 등으로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원시림 군락지까지 사라지는 등 생태계가 크게 파손되고 있으나 파괴된 곳을 방치하다시피해 생태계 파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특히 백록담은 관광·등산객들의 발길 때문에 생긴 분화구 안벽의 산사태로 거의 메워져버려 바닥을 앙상하게 드러낸 가운데 무당개구리 등 습지생물이 멸종위기를 맞고있으며 백록담 분화구 안벽도 자생하던 5백여그루의 주목·구상나무 등 원시림이 말라죽어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학계측은 진단하고 있다.
◇자연파괴=파괴가 심한 곳은 경관이 빼어난 윗세오름·서북벽코스(장구목)·남벽코스·백록담 등 해발 1천7백50m∼정상(1천9백50m)사이 4개지역으로 모두 천연보호구역.
이중 서북벽코스가 가장 심해 철쭉·눈향나무·시로미 군락지가 관광·등산객의 발길로 생긴 산사태 현상 때문에 뿌리째 뽑혀 발가벗겨진 크고 작은 계곡(최고 너비 5m·깊이 3m·길이 2백m)이 20여곳이나 생겨났고 윗세오름∼서북벽코스 장구목 일대 2㎞ 구간에는 화산층의 얕은 지표식물이 관광·등산객들에게 짓밟혀 죽어 너비 50∼1백m의 돌더미 사태가 일어나 복구불능의 상태에 놓여있다.
남벽코스도 87년 산을 파내 길이 2.4㎞,너비 1.5m로 돌계단 등산로를 낸데다 경사 60도의 가파른 1.4㎞구간은 산사태,관광·등산객의 발길로 주변 10∼50m의 지표식물이 죽는 등 생태계 파괴가 극심하다.
어리목·영실코스가 만나는 윗세오름지역의 경우 관광·등산객의 95%가 이 코스로 몰려 휴게소앞 초원 2천여평이 흙마당으로 변했고 군락을 이뤘던 구상나무·주목 등 고산 희귀식물이 멸종상태다.
◇방치=백록담의 경우 5년전부터 20일만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내 거북의 등처럼 갈라지고 있으며 분화구 안벽도 특히 경사 45도의 동남쪽과 동북쪽의 경우 너비 50∼2백m로 분화구 바닥까지 2백여m가 황폐화된채 방치돼 비만 오면 흙·돌이 호수로 밀려 내려오고 있다.
남벽코스도 손을 쓰지못하고 있고 서북벽코스·백록담은 90년 1월1일부터 등산로 폐쇄의 안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으나 방치해 놓은 탓으로 반복되는 산사태 등에 의해 생태계 파괴는 확대되고 있다.
◇보존대책=제주도는 매년 3천여만원을 들여 돌계단 정비만 해오다 올해 8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어리목 사제비동산·영실코스와 윗세오름지역에 대한 붕괴방지·등산로보수·나무뿌리 보호시설을 하고 있으나 파괴가 심한 서북벽코스·남벽코스·백록담은 예산부족 때문에 손대지 못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예산책정이 되지 않고 있다.
제주대 김문홍 교수(48·식물학)는 『백록담·안벽은 사실상 원상복구가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하고 『피해가 심한 지역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복구를 적극 펴지 않을 경우 파괴가 가속돼 복구 불능지역이 늘어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박행신 교수(55·제주대 생물학)는 『한라산을 살리기 위해선 무턱댄 관광·입산을 제한하고 등산로 안식년제를 어리목·영실코스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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