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투병학생의 미소(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23년동안 결코… 남에게 죄지은 적이라곤…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저를 죽게 내버려 두시지는 않을겁니다.』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7개월째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명지대생 정태수군(23·화학4)은 마주치는 사람들이 안부를 물을때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지만 이렇게 대답한다.
『앞으로 사회에서… 더욱 봉사하라고 잠시… 고통을 주고 계신거예요』라는 미소와 함께.
혈액암의 일종인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이 내려지기 전인 지난 3월까지만해도 정군은 매학기 장학금을 받는 모범생에다 장교임관을 눈앞에 둔 건강한 ROTC 대학생이었다.
가끔씩 결리는 가슴통증을 무심코 넘겨오다 우연한 X선촬영으로 엄청난 병마가 스며든걸 알게됐다.
서둘러 골수이식수술을 받지않으면 생명을 잃는다는 사실과 수술비가 최소한 8천만원 이상이 든다는 것도 알게됐다.
가난한 아버지는 물론 1천만원짜리 전세집에 사는 온 가족의 「고생」이 시작됐다.
많을땐 하루 2백만원까지 드는 각종 치료·약·입원비를 대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벌써 2천만원의 빚을 졌지만 아직 1차수술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
『무수히 맞은 항암제 때문에 머리칼이 모두 빠지고 피부가 벗겨져 나가면서도 웃음을 잃지않던 아들이 최근들어 웃음을 자꾸 잃어가는군요….』
엄청난 입원비 때문에 1주일전 퇴원,통원치료를 다니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아버지 정의섭씨(56)는 손이 떨리고 목이멘다.
골수를 빼내 냉동보관시킨뒤 혈액속의 암세포를 제거하고 다시 골수를 주입하는 자가골수이식수술을 이달말까지 받지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최후통첩」도 받았다.
『며칠전 소위계급장을 단 아들이 씩씩하게 경례를 하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는데….』
정군이 다니던 교회·학우 등으로부터 쏟아진 온정의 손길도 수술비용까지는 어림없는 액수.
의료보험 혜택에서 벗어난 만성 난치병의 장기치료에 대책이 막막한 정씨 가정의 딱한사정이다.
고통속에서도 미소를 지켜가는 정군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활짝 웃을 날이 있게될 것인가.<홍병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