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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비처럼 음악처럼 ♬ 재즈 물결에 자바가 젖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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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하늘은 잔뜩 비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장대비를 쏟아붓는 동남아의 우기는 도시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인도네시아 전역을 강타한 홍수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둠이 드리워지며 자카르타는 마치 다른 도시처럼 변했다. 2일부터 사흘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바 재즈페스티벌 2007'이 내뿜는 달콤하면서도 섹시한 재즈 선율 때문이었다. 현지 언론은 "홍수 뒤에 음악의 물결이 밀려왔다"고 전했다.

올해 3회째를 맞은 자바 재즈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600여 명의 재즈 아티스트가 참가하고, 6만여 명(지난해 집계)의 관객이 모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재즈페스티벌이다. 주최 측은 올해 관객 또한 지난해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에는 세르지오 멘데스(브라질), 제이미 컬럼(영국), 샤카 칸.존 스코필드(이상 미국), 사다오 와타나베(일본) 등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가해 축제의 열기를 후끈 달궈놓았다.

#거대한 재즈 박람회= 자바 재즈페스티벌은 재즈 박람회요, 재즈 백화점이다. 재즈의 대향연이 17개의 스테이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졌다. 관객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음악을 골라 즐겼다.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 같은 전시장에서 대규모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고 보면 된다.

관객들은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를 들고 자기 취향대로 무대를 옮겨다니며 재즈를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인파만 놓고 보면 자동차, 혹은 가전 박람회와 비슷했지만 대신 이곳에는 흥겨운 재즈 선율과 음악적 소통이 있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온 무이즈(25.IT 엔지니어)는 "한 장소에서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의 공연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여느 공연에서 흔히 터져 나오는 앙코르 요청도 없다. 빽빽이 짜인 공연 일정표를 보며 스테이지를 옮겨다니는 관객들에게 앙코르는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박람회식 페스티벌은 관객의 잦은 이동 때문에 아티스트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재즈를 대중화하는 데 이것 이상의 대안은 없는 것 같았다. 사흘 내내 공연장은 인종 불문, 국적 불문, 남녀노소 불문 등 오로지 재즈 하나만을 위해 모여든 관객으로 넘쳐났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 김자현씨는 "재즈가 관객을 즐겁게 한다기보다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두 모였다는 것 자체로 즐겁다"고 말했다. 재즈평론가 최규용씨는 "재즈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나라가 기업들의 후원으로 세계적 규모의 재즈 페스티벌을 매년 연다는 것 자체가 무척 놀라우면서도 부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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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교감이다= 즉흥성과 기교를 큰 축으로 하는 재즈. 여기에 아티스트들 간의 교감, 관객과 아티스트 간의 교감이 더해진 것이 자바 재즈페스티벌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자신의 공연을 마친 아티스트들이 다음날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것 자체가 관객에게 큰 선물이다. 일례로 첫날 단독 무대를 가진 신예 피아니스트 엘다는 둘째 날 거장 하비 메이슨.론 카터의 무대에 게스트로 참여해 환상적인 트리오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 같은 페스티벌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관객과 아티스트들이 한데 뒤섞여 즐기는 것도 이곳에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마커스 밀러의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몸을 흔들던 '레벨 42'의 리더 마크 킹은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한 명의 관객이었다. 론 카터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여기저기 공연장을 누비며 재즈를 즐긴 것도 그리 큰 화제는 아니었다. 지하통로로 공연장과 연결된 호텔에 묵었던 관객은 더 큰 행운을 누렸다.

휴가를 내고 자바를 찾은 회사원 홍민정씨는 "호텔 로비에서 하비 메이슨과 세르지오 멘데스를 만나 사진을 찍고, 다이앤 슈어.리사 오노 등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한 것은 큰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재즈에 젖어드는 아시아= 자바 재즈페스티벌 같은 재즈축제가 아시아 곳곳에서 빠른 속도로 정착돼가고 있다. 최근 3, 4년간 생겨난 아시아 지역 재즈페스티벌은 자라섬(한국), 도쿄(일본), 방콕(태국), 싱가포르, 마닐라(필리핀), 페낭(말레이시아), 두바이 등이다. 특히 자라섬 페스티벌은 관객수(11만 명)만 보면 아시아 최대 규모다.

9월에는 중국 상하이가 첫 재즈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카타르도 내년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재즈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원동력으론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증폭된 문화적 갈증이 꼽힌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기획자인 인재진 감독은 "유럽의 재즈공연이 대부분 여름에 집중된다면 봄.가을의 재즈 페스티벌은 아시아로 몰리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재즈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아시아 시장은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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